올해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그간 오매불망 도시에서 귀농을 꿈꾸다가 올해 강원도 강릉의 산골짜기로 귀농을 하게 되었다.
핸들 꺾이는 대로 차가 들어갈만한 곳은 무조건 들어가고 보는 호기심 많은 우리는
어떤 때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길이 끊어져 후진을 하다가 빠지기도 하고
또 낯선 마을을 발견하기도 한다.
좁은 시멘트 길이 꼬리를 감추며 유혹하던 산길.
그곳을 따라가 보니 강릉 바다도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니 펑퍼짐한 농토도 보였다.
몇년 후, 그러니까 올해 우리는 그곳을 귀농터로 정하였다.
그리고 오랜 친구는 두어달 전에 남편이 되었다.
첫 농사는 옥수수로 시작했다.
둘다 태생이 강원도라 익숙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 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비탈진 밭에 찰옥수수를 심었었다.
엄마는 옥수수를 쪄서 한 바구니 들려 주시며 숙직을 하는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했었다.
알이 쪽 고른 하얀 옥수수를 쑥스럽게 건네던 유년시절로 잠깐 거슬러 올라간다.
몇 십년의 세월이 흘러 당연히 옥수수, 콩 등은 GMO가 조작된것인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었다.
3월 18일 한 알 한 알 옥수수를 상토에 넣었다. 정성도 한 알 한 알 같이 묻어 주었다.
아기 돌보듯 비닐하우스에서 물을 줘 보살피니 일주일쯤 작은 잎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보름쯤 되니 제법 옥수수 모양새가 되었다.
4월 15일. 드디어 옥수수를 본밭에 옮겨 심었다. 호미로 파고 심던 예전과는 달리
2인 1조가 되어 수동 기계로 심으니 노동력이 훨씬 덜 든다.
산의 나무들이 연두색 여린 잎을 틔우며 봄 맞이를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옥수수
풀을 일일이 뽑아 준다. 고랑과 고랑 사이도 선호미로 풀을 긁어 없앤다. 약을 한번도 치지 않았다.
곁순도 따주고, 바람이 심하면 쓰러지지 않았을까 달려가 살펴주고, 가뭄이 심하면 같이 목말라하며 애태웠다.
드디어 개꼬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옥수수 수염도 보인다.
옥수수는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 비료를 3번을 줘야 한다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주지 않았다.
전주인이 소똥거름을 넣어 밭 관리를 잘 한 탓도 있었지만
비료로 큰 것보다는 작지만 알찬 옥수수를 만들어 좀 덜 먹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 가뭄으로 크기는 작지만 더 찰지고 단 옥수수가 되지 않을까싶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빨강머리로 나온 수염은 단정한 긴머리소녀로 변하며 옥수수는 통통하게 익어갈 것이다.
2천포기씩 2주 간격으로 총 4천포기 심은 옥수수는 7월초부터 보름정도 수확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수확을 해야 하는 옥수수는 벌써부터 조금 긴장이 된다.
이걸 우찌 다 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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