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가득한 2007. 2. 26. 23:54
내 생일
번호 : 2128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111   스크랩 : 0   날짜 : 2005.02.20 16:51
생일이라 함은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날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만큼 내가 잘 살아 가고 있는가 하는.

내 생일은 1월 21일, 엄마 생신은 1월 22일.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며 위인전을 열심히 읽어 치울 때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큰 칼을 차고 일본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읽을 때면 책장은 빨리 넘어 갔고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가 한글을 연구하다 잠들었을 때 어의를 벗어 주었다는 장면도 눈에 보는 듯하고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본의 총칼에 맞아

감옥에 가서는 고추가루 고문을 당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덩달아 코끝이 매워지며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일본놈들을 이겨 보리라 다짐하곤 했다.

개화기의 여성들처럼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는 아니더라도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개량 한복을 입고 싶었던 것도 유관순 위인전 탓일 게다.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3월 1일.

내가 태어나던 해의 1월 21일은 양력으로는 3월 1일이었다.

그래서 난 유관순을 존경한다는 의미를 대고 3월 1일로 생일을 바꾸었는데

우리 식구들은 여전히 음력으로 1월 21일날 와서는 내게 생일 축하를 해 주었다.

열여섯 살.

그 때는 유관순이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감옥에서 고문에 돌아가신 때였다.

우리 반에서 가장 먼저 등교를 하는 나는 묵념을 올리듯 교실에 걸려 있는 유관순 열사의 액자 앞에섰다.

그리고는 유관순이 저고리춤에 비밀리에 간직한 독립만세 운동에 관한 유인물을 넣고 고개를 넘는 걸 생각하고는

똑같은 나이의 나도 과연 나라를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하루를 계획하는 비장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리고는 유리창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유관순의 존경으로 이어진 나의 생일 바꿈은 우리 집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3월 1일은 자꾸 잊어 버려서 엄마 생신 전날인 21일 미역국을 끓여 주시곤 하였다.

내가 누누히 생일을 옮겼노라고 했지만.

그런데 말이다.

3월 1일 이라는 게 지난 학기는 이미 끝나고 새 학기를 맞이 하는 바로 전날이어서

쓸쓸하다는 거다.

생일을 원래대로 음력으로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이미 나는 잡다한 세상살이에 관심을 가지는 속물이 되어

유관순 전기를 읽으며 느꼈던 일본에 대한 분노와 유관순에 대한 감동이 희미해졌다는 의미이리라.

이제 또 다른 이유를 대자면 3월 1일은 휴일이라 쏠로로서 혼자 보내기 싫다는 강한 이유가 유관순을 내리 눌렀기 때문이기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