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스승의 날
햇살가득한
2007. 2. 27. 00:23
스승의 날 | |
번호 : 2552 글쓴이 : 김삿갓 |
조회 : 107 스크랩 : 0 날짜 : 2005.05.16 17:05 |
벌써 일주일전부터 문자가 오고 난리였다. "쌤 찾아 갈게요.드릴게 있어서요." 집에서 쉬고 있는 내게 버스로 40여분 걸리는 우리집과의 거리는 아이들에겐 먼 거리였다. "그래, 올램 와." 했더니 4명의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온다. "편한 옷 입고 오지." 했더니 애들은 교복을 보여주고 싶었다나. 아닌게 아니라 작년 6학년 때의 알록달록한 색깔에 멋대로 기른 머리스타일과는 달리 하얀 블라우스에 베일정도로 날이 선 치마 주름에서 아이들은 훨씬 더 성숙해 보였다. 거기다가 흰 블라우스 속에 입은 줄이 간 브래지어가 더욱 소녀답게 보인다. "야! 이 먼데 까지 찾아 와 주구. 1년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던 작년. 얼른 졸업이나 시켜버렸으면 하고 졸업식 날만을 기다렸던 작년이었다. 아이들은 케익을 꺼내더니 불을 붙인다. 전화로 "쌤 몇 살이예요." 하길래 "스물 하나." 하고 가르쳐 줬더니 이 지지바들 맘대로 초를 가져왔다. 하여튼 초에 불을 붙이더니 박수를 치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 준다. 쑥스러운지 박자도 틀리고 음정도 틀리고. 케익을 먹고 떡볶이에 군고구마에 손이 많이 가는 샌드위치까지 물론 직접 해 주고는 뭔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근처 딸기밭엘 갔다. "우리가 직접 따서 사 가면 안돼요?" 딸기밭 아줌마 탐탁하지 않지만 OK. 덩달아 신이 난 나는 딸기 바구니를 들고는 딸기밭고랑을 뒤진다. "야, 이건 진짜 크다. 이런 건 슬쩍 먹는거야." 했더니 "그럼 파는 사람 손해잖아요." 하면서 먹지를 않는다. "야, 딸기밭에 들어 왔음 슬쩍 슬쩍 따 먹기도 하는거야." 목소리를 낮춰 말을 해도 애들은 따서 담기만 한다. 그 선생에 그 제자 아니랄까봐서. '야, 큰 거를 많이 따 담으면 값을 더 비싸게 달라고 한단 말야.' 어른인 내가 너무 속을 보이는 것 같아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했는데 애들은 좀 더 큰 걸 따기 위해 고랑을 하나 뛰어 넘었다. 점프까지는 좋았는데 착지가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엉덩이가 딸기 밭 중간쯤에 떨어져 딸기순이 주저 앉았다.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하고 딸기를 일으켜 세우는데 이미 부러진 딸기순이 일어날 리 없다. "야, 티 내면 안 돼." 했더니 딸기를 하나 따서 입에 넣고는 꼭지를 딸기순 안쪽으로 넣어 감춘다. "야, 니네들 이빨에 딸기씨 끼지 않도록 해." 한 아이가 정색을 하며 주의를 줬는데 이 녀석 자기 발밑으로 멀쩡한 딸기가 으깨지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물론 그 아이는 딸기 국물까지 쓸어서 안보이게 처리를 했다. 아줌마는 딸기밭에 우리를 들여 보내놓고는 두 번이나 나와 보셨다. 한번은 다른 고랑에 가서 따느라 들키고 한번은 딸기 순 밟는다고 혼나고. 아줌마는 우리가 따 온 딸기를 보더니 입이 딱 벌어진다. "아주 고봉으로 눌러 담았어요. 얼른 가요." 분명히 아까는 만원어치 수북히 담아 오라더니. 내가 봐도 우리가 하긴 너무했다. 흘러내리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차에 실었으니까. 100년이 된 성당의 박물관이 있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대뜸 공짜냐고 묻는다. 손바닥으로 머리 벗겨지는 시늉을 하면서 공짜면 가 봐야 한댄다. 집에 돌아와 딸기를 갈아 먹었는데도 꽤 많이 남았길래 "많지는 않지만 너희들이 딴 거라고 부모님 갖다드려." 했더니 아이들 펫트병을 잘라 딸기를 담아들고 신나게 버스를 타러 간다. 지영이라는 아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도 안 해서 발표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 시간을 다 보낸 적이 있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살면서 제 밥그릇이나 찾아 먹을까 걱정이 되곤 하던 아이였다. 일기장에 조언도 해 보고 따로 불러 약속도장까지 찍었는데 학기말이 되어서야 겨우 개미소리만하게 발표를 하더니 이젠 가창 시험도 혼자 나가서 본다고 한다. 버스 뒷자석에 제비처럼 앉은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아이들은 내가 지쳐 있을 때 꺼내 볼 푸른 색 카드를 주고 간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