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숯을 굽다

햇살가득한 2007. 2. 27. 21:52
2007.02.01 16:44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살자며 물건 살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산다.

그렇다보니 갖고 있는 물건이 그 용도에 맞게 꼭 필요한 것인데

지난해 도자기 축제 때 산 주전자만해도 그랬다.

짙은 회색의 두툼하면서도 한복입은 여인네가 연상되는 삼각형의 곡선이 이뻐서

하나 장만한 주전자.

차를 한 잔 마시고도 식지 않아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어 부산함을 떨어도 되지 않는 그런 주전자였다.

태우고, 또 태워서 전화위복을 겪었고 그 뒤로도 정신 바짝 차리마 하면서 올려 놨던 주전자.

헛개나무 두 조각과 산청목 한 조각을 넣고는 뭉근히 끓이려면 20분만 끓이자 해 놓고는

아~~~

불현든 생각난 불 위의 주전자.

20분 하고도 1시간이 더 지난 뒤였다.

주전자를 열어보니 바스락 부서지는 숯 덩이가 나온다.

절망감.

주전자를 주전자라 부르지 못함을...

이젠 무슨 용도로 써야 할까?

그래도 제 용도로 쓰고자 쇠 수세미를 이용해서 눌어붙은 검댕이를 제 떨어 내고 물을 끓였다.

유자차에 물을 붓고 멜라민 냄비 받침에 주전자를 올려 놓았다.

처음엔 수증기가 맺히려니 했다.

하지만 주전자는 건망증 많은 주인과는 더 이상 살기 싫다며 바닥에 금을 내어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탓이다. 벌써 몇 번이나 생주전자를 불위에 구웠는가 말이다.

그래도 선이 아름다운 주전자를 화분으로 역할을 바꿔주기 위해 한 켠으로 밀어 놓는다.

두툼한 주전자를 쓴다는 게 건망증 많은 여자의 과분한 사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