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집은 어디일까?
어쩌다가 전화통화나 문자를 보낼 때 존대말을 쓰다가
슬그머니 말을 놓곤 하는, 왕래가 잦지 않은 친구가 있다.
3전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옆 침대를 차지하고 들어온 여자.
집이 부산이라 문안 올 사람도 없는데
어쩌다가 교회 사람들이 다녀가곤 하였다.
보통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병실 문을 나서면 그만일텐데
나는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속도를 낸 차 속에서 가요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랬다.
남한강변을 따라 비포장길로 덜컹거리며 가야 하는 길
노인 요양원에서 할머니 뒷수발을 들고 있는 친구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역시 맨얼굴의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가서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서도
된장찌개를 좋아할 것 같다며 된장을 듬뿍 넣고 버섯을 넣어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내왔다.
밥을 먹다 말고 친구는 할머니 기저귀를 갈아 주러 갔었고
우린 남자 얘길 하면서 낄낄거렸다.
남한강에 까만 튜브 하나 던져서
거기에 올라타 마냥 흘러 가고 싶기도 하다.
밤을 주우러 갔다.
아는 집이라 얘기를 하면 된다면서 그 집으로 갔는데 아무도 없다.
일부러 심어 놓은 밤이라 주워서 팔아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주워가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친구를 따라 밤알을 주웠다.
윤기나는 알밤을 줍는 즐거움은 크다.
이게 알밤이 아니고 콩알이었다면?
아, 싫다.
거의 반자루를 주웠을까
할머니가 뭐라 하시며 올라 오신다.
찔린다.
친구가 가려주길 바랬지만
이 친구 내 핑계를 대는 걸 보니
마냥 떳떳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멋적어 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내, 올라 오는 것 다 봤어."
할머니는 언덕배기에 걸터 앉더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신다.
붕어 싸만코다.
딱 세 개를 가져 오셨다.
순간 야단맞으려고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며
'붕어가 통통해요'라는 말을
'인정이 통통해요'라고 맘속으로 잽싸게 바꿔 읽었다.
할머니는 더 주워 가라고 하셨지만
우린 무게가 느껴지는 밤에 만족해 하며 그만 줍겠다고 하였다.
횡재다.
전에 밤을 사려고 만지작거리다가 내려 놓았었다.
왠지 밤알은 인정이라 생각했기에.
좀 다른 길을 가겠다고 비닐 하우스를 기어 오르고 있는 호박넝쿨이 별나 보이기도 하고
이쁘기 때문에 욕심이 나서
용기를 내어 하나 얻은 호박까지.
처음엔 20장 정도만 뜯을려고 했었다.
돼지고기에 두부, 양파, 당근을 다져 넣고 양념하여
튀기는 것도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깻잎 따는 손놀림이 빨라 졌다며 웃었다.
어렸을 때 했던 소꿉 놀이가 떠올랐다.
딸이 있다면 흙에 물을 부어 이런 밤수저로 저어 커피도 만들어 볼텐데.
친구는 친정에 간 딸에게 엄마가 이것저것 싸주듯
고구마를 한 봉지 건넨다.
요양원 살림이라 눈치를 보면서...
친구네 집 마당가에 구부러진 길을 따라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