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그 제자에 그 선생

햇살가득한 2007. 11. 17. 18:06

누군가(이름은 알지만 비밀) 이런 말을 했었지.

공부시간에 창밖보며 딴 생각 하다가 선생님께 공상가라고 혼났다고.

공부는 못했겠지만

똑부러지게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거 보고

그래,

수학 35점이면 어떠랴.

다양하게 원하는 길을 가면 되는 거지. 

미용사가 된다는 우리반 꼬맹이를 떠올렸다.

"나중에 내 머리 니가 해 주면 되겠네."

하면서 미용사 꿈을 부추기며...

 

4교시 체육시간에는 뒷산 늪지까지 가기로 했다.

내가 이런 계획을 짜는 것은 거의 획기적인 일이다.

대부분 교사들은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까봐

일을 만들지 않는 거다.

 

 

간식을 싸 오래서는 먹고 

소화를 시킨 뒤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신발주머니는 내 차 트렁크에 넣도록 했다.

밖에 모아두면 다른 아이들이 차고 다닐까봐.

 

앉은 번호를 해서 인원을 확인하고,

나름 군기(?)를 잡으려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차례 하고

출발.

 

나는 앞장서서 길 인도를 하고

반장, 회장은 뒤에 세워서 뒤쳐지는 아이들을 없게 했다.

 

"다섯 가지 정도 인상깊은 것 생각해 보기다."

교실에서 늘 동시를 외우지만

머리로 외워서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거 말고.

옷 벗은 나무를 보고

낙엽을 밟아 보고

가을을 느껴 보라고

더불어 체육활동도 겸해서...

 

목적지까지 올라가 인원을 확인해 보니 세 놈이 없는거다.

...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고

자유시간을 잠깐 줬더니 아이들 신이 났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운동을 하고...

 

돼지들 소풍 나온 것 처럼

또 무리지어 산에서 내려온다.

여자애들은 "앞으로"노래를 재잘재잘 부르며.

 

학교에 도착했더니 이미 녀석들은

창문을 넘어 가방을 갖고 튄 뒤였고

 

다른 반 선생한테 부탁한 창문과 교실 앞 뒷 문 잠그라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었다.

 

아이 엄마들이랑 통화를 했고

아이를 기다렸다.

 

그 제자에 그 선생이다.

나도 6학년때 이 뽑는 게 싫어서

뒷산으로 도망친 일이 있었다.

열 명 정도 되었는데 산에서 놀다 놀다 지쳐서

나중엔 선생님이 우릴 제발 발견해 주길 바라며 잘 보이는 곳으로 나와 놀기도 했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복도 저쪽에서부터 가까이 들려 오던

남자 담임선생님은

슬리퍼를 벗어서 우리들 종아리를 때렸다.

오각형, 육각형모양의 슬리퍼 바닥이

종아리에 척척 안기며 벌집같은 자국을 남겼다.

 

두 명의 애들이 들어왔다.

평소에 내가 무섭게 대하지 않은터라 녀석들은 별로 주눅든 표정도 없이 문으로 들어섰다.

 

아이 엄마랑 통화를 하여 사실을 알리고 

종아리를 때려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했다.

 

순간 고민을 좀 했다.

이미 말로는 안 되는 녀석들에게 

몇 마디 훈계가 들어 먹힐 리 없고 

종아리를 친다면 내 맘이 불편할 것 같고   

 

종아리를 두 대씩 때렸다.    

집에서도 맞아보지 않은 종아리에 선이 두 줄 씩 갔다.

 

나는 마음이 이리 불편하건만

아이들과 학부모는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