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누가 나 좀 잡아 주

햇살가득한 2008. 2. 18. 19:55

두어달 전에 영양 은마래 언니네 집에 갔을 때

빈 상자에 구멍을 뚫어 출입문을 만들고

철사를 끼워 핸들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해담이가 들어가서 탈 수 있도록 장난감차를 만들었다. 

은마래 언니는 해담이랑 잘 놀아준다고

해담이에게 나를 각인시키려 했는데

"누구라고?"

하면 해담이는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방랑자 이모."

 한다.

"언닌, 뭔 방랑자! 이제 정착할라고 닉네임까지 바꿨는데. 해담아, 참한 이모 해봐."

그래도 요녀석 엄마 말이 최고인지라 자꾸 '방랑자 이모' 한다.

 

그래. 해담이 말대로 정말 방랑자 이모인가 보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나는 이천에서 몇년을 살다가 촌 생활이 너무 심심해서

벅적벅적한 안양 도시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작년 광주에 시골집을 사는 바람에

광주에서 중간 기착지인 성남을 거쳐 안양으로 출퇴근을 하다가

이번엔 내 집에서 텃밭 가꾸며 살려고 광주로 전출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인지.

서류를 내러 갔던 윗분이 서류를 잘못 작성해서 다시 쓰라고 하는 바람에 

그 짧은 순간에 성남으로 바꿔 써 버렸다.

성남이냐 광주냐를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광주로 쓴 거였는데.

 

이미 던져진 화살.

드뎌 오늘 뚜껑을 열어 보니

나의 의지와는 영 딴판으로 발령이 나 버렸다.

혼자 사시는 엄마를 이따금씩 보면서

광주에서 출퇴근을 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는데

광주에서 출퇴근 하기도 어렵고

성남에서도 열악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말았다.

 

어제는 인터넷을 뒤져 해외 봉사 지원서를 써 넣었다.

올해도 작년과 같은 삶을 산다면 과감히 해외로 튀어야겠다.

해외가 아니라면 제주도라도 튀어야겠다.

 

노트북 뚜껑을 닫으며

누군가 나를 붙박이처럼 붙잡아 준다면

도심 한 복판이든, 버스가 하루 세 대가 들어가는 영양 촌이든, 바다 건너 제주도든 뿌리 내리고 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