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는 배꽃이 한창이더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카피가 있지만
다음주부터 좀 바빠질 일에
"열심히 일할 당신, 떠나라."
늘 노는 게 우선인 나는
책에서 봤던 나주에 나무를 가꾸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만나러 먼길을 나섰습니다.
봄 빛 좋으면 언제 소쇄원엘 가자던 바루를 생각해서
소쇄원엘 먼저 들렀지요.
어스름 저녁이라 얼핏 둘러 보는데 이미 송편같은 반달이 떠 버렸어요.
하여 근처에서 민박을 하고는
새벽에 일어나 다시 소쇄원엘 갔습니다.
정자에 앉아 요런 작은 공간을 갖고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며
댓돌 위에 벗어 놓은 등산화 주인을 부러워 했어요.
그 사람은 어제도 군불때는 방에서 몇 사람과 차를 마셨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등산화가 한 켤레만 보이는 거예요.
차나 한잔 얻어 마셨으면 하는데
아저씨가 부르는 겁니다.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표정관리가 안 됩니다.
아랫목을 내어 주길래 엉덩이를 붙였더니
엉덩이가 익어 갑니다.
조금조금 나 앉다가 차를 따라주는 주인장 곁까지 다가 갔지요.
한국정원, 한국적인 것. 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치 선택받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몇 백년이 된 고택엘 가면
휘감겨 돌아가며 나이테가 드러나는 그런 오래된 기둥도 안아보고
그 안에서 하룻밤 쯤 자 보고 싶은 소원이 늘 있었거든요.
소쇄원에서 나와 지도를 보니 산적소굴이 가까웠기에 전화를 드리고 찾아 뵈었습니다.
늘 즐겁게 사시는 산적님과 금방이라도 깔깔깔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사모님과 또 이쁜 딸.
집구경도 하고 부화한 지 며칠 안 된 병아리를 끼고 있는 닭도 보고
달걀 꾸러미도 선물로 받고는 목적지인 죽설헌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꽃인양 나풀거리며 떨어졌습니다.
길옆 보랏빛 꽃잔디가 마중을 하고
한껏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는 아기살 같은 연두빛입니다.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고
책에 나온 사람이라 유명세를 탈 것 같아서 사람 만난다는 건 뒷전이었고
그가 가꾸어 온 세월과 정이 묻어 나는 정원을 구경하고 싶었지요.
죽설헌 주인은
공직 생활 20년을 한 뒤 고향 나주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입니다.
마침 주인 부부는 해외 출타 중이었고
그집 따님이랑 차를 마셨습니다.
바람이 불면 꽃눈이 내려 작은 연못에 떠다녔습니다.
그것을 오후 햇살을 받으며 넓은 창가에 앉아 바라보노라니
고요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가꾸어갈 꿈도 떠올려 봅니다.
나주 들판은 온통 하얀 배꽃입니다.
배꽃이 이렇게 단아하게 피는 줄 첨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