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부려먹기
“뭐 별루, 쪼금밖에 안 다쳤어. 그냥 좀 불편해서.”
자전거 사고치고는 좀 크게-팔이 부러지고 얼굴과 손가락을 꿰매는-부상을 당한터라 깁스한 왼팔과 꿰맨 오른손 때문에 두 손을 쓸 수 없어 성남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걱정할까봐 남 얘기하듯 가볍게 얘길 하며 내려오시라고 했더니 엄마는 어디 여행이라도 하듯 집 가까이 있는 고속버스를 타지 않고 대구를 지나쳐 가는 친구분과 기차를 타고 내려오셨다.
한 쪽 팔은 ㄴ자로 깁스를 했고, 한 쪽 눈밑부터 목까지 허연 붕대를 붙인 뒤 양산을 팔에 끼고 마중을 나갔더니 엄마는 적잖이 놀랬다. 나는 햇빛을 볼까봐 싸맨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이것저것 챙겨 싸들고 온 엄마의 짐보따리로 화살을 돌렸다.
“이런 건 무겁게 왜 들고 와요. 천 원만 주면 살 걸.”
엄마는 무공해로 키운 거라 가져왔다며 들고 오느라 어깨가 빠질 거 같단다. 엄마를 위하는 내 말투는 늘 이런 식이다.
엄마는 동그란 애호박, 오이, 고추, 깻잎 등을 가방에서 풀어 놓으셨다. 쌀도 대구에서도 있건만 그 무거운 걸 한 말씩이나 가져 오셨다. 그 한 말이나 되는 무게는 끼니 거르지 말고 꼭꼭 밥 해 먹으라는 당부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당신 어깨는 빠져도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는 엄마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 날부터 나의 엄마 부려먹기는 시작되었다.
엄마를 씻겨 드려야할 내가 머리를 세수대야에 거꾸로 박고 엄마의 쩍쩍 갈라진 손바닥에 고인 샴푸의 양이 많으니 적으니 종알거렸다.
긴 머리를 산발하고 등을 돌려대고 앉으면
“옛날엔 이런 게 없어서 안 해 보 니 이쁘게 안 된다.”
며 게처럼 생긴 집게 머리핀을 어설프게 꼽고 곱창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는다.
엄마가 내 머리를 만져준 기억이 없는 건 세월이 많이 흘러서 만은 아니리라. 육 남매를 두고 해뜨기 전 밭일을 나가야했던 엄마는 머리 치장에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머리핀이나 고무줄이 필요 없는 바가지 머리를 깎아 주었다. 빗질만 슥슥 하면 되므로 달리 시간이 들지 않았다. 그 머리도 아마 언니들이 잘라줬던 거 같다. 잘 들지 않는 가위로 비둘비뚤 자르다보면 똑바로 자른다고 자꾸 자르고. 나중엔 도토리 껍질처럼 눈썹위로 댕강 올라간 앞머리 땜에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뻗대던 때도 있었으리라.
“왼쪽으로 비뚤어졌어요. 다시.”
다시 등을 돌려 대고 앉으면 엄마의 마른 손이 머리카락을 고른다.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이 머리에 착 감기지 않고 가랑잎처럼 겉돌아 머리카락도 늘어졌고 고무줄을 맨 것도 느슨하다.
이제는 내 아이의 머리를 빗겨 줘야 할 엄마가 뒤늦게 공부를 한다고 대구로 내려간, 거기에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까지 친 천방지축 딸년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 그래도 엄마가 계시는 동안은 맘껏 투정을 부려보리라.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돌린 뒤 가라앉아 있던 적막을 깨우듯 열쇠를 내던지면 금속성의 열쇠 소리는 더 공허하게만 들려 오는 것이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 그저 된장찌개 하나를 놓더라도 김이 솔솔 나는 엄마가 해 준 밥을 마주 앉아 먹고 싶었다.
연로해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게 한참이나 걸리는 엄마는 딸년을 위해 밥을 하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들고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 옥상에 널었다.
딸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는 앙숙이자 친구같은 존재이다. 이 세상의 많은 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도 물건을 살 때 꼼꼼하게 따져보는 엄마를 꼭 닮은 자신을 발견한다.
어제였다. 작년에 대구에 와서 반지처럼 가운데가 뚫린 막창을 처음 먹어본지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막창집엘 갔다. 깁스한 왼팔의 각도를 조금만 꺾으면 그 손에다 깻잎을 한 장 놓고 쌈을 싸 보련만 식탁위에 펴놓고 싸니 엄마가 쌈을 싸서 내밀었다.
내가 엄마에게 쌈을 싸 드려야 하지만 엄마가 사고뭉치 딸년에게 쌈을 싸서 입에 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식당 아주머니 보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관심도 가져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어릴 때의 일들이 엄마가 내민 쌈을 어색하게 받아 먹으면서 사그라지는 것이었다.
지금 엄만 두 시간째 주방에서 요릴 하고 계신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하진 않았지만 딸년을 위해 뭔가를 해 주시려는 엄마를 막고 싶지 않다. 형제가 많고 늘 살림에 쫓기느라 젖도 제대로 못 물려 줘서 내 키가 작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는 이 참에 그 죄책감을 다 벗으려는 모양이다. 부엌일도 큰딸에게 맡겼던 엄마는 흰 밀가루와 튀김그릇을 온통 늘어 놓으실 정도로 부엌일이 서툴렀다. 또 어쩌다가 해 주시는 음식도 새댁이 요리 실습하듯 그 때마다 다른 맛이 났었다. 어쨌든 지금 난 엄마가 해 주는 게 좋기만 하다.
엄마는 큰 고추의 속을 털어 내고 다진 돼지고기에 두부 등을 이겨 넣고 튀김옷을 입힌다. 또 그것을 덥기로 유명한 대구의 한 여름날 땀을 흘려가며 기름에 튀겨 낸다.
손을 쓸 수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새 살이 나오는 얼굴의 흉터를 햇빛을 피해가며 모자라는 식용유를 사오는 거랑 선풍기를 엄마쪽으로 돌려 놓는 일. 그리고 호들갑을 떨어가며 좀 과장되게 맛있게 먹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를 부려먹는 일도 오늘로써 끝이다. 엄마는 내일 집으로 올라가신다. 꿰맨 손이 좀 아물었거니와 더 이상 엄마의 느린 동작의 결과물을 받아 먹지 않으려고 내가 떠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와 나와의 거리에 새살이 돋은 때문이었다.
물가에 어린애를 남겨두고 가는 거 같다는 어머니께 오늘은 혼자서도 밥 해 먹고, 걸레도 잘 빨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할텐데…….
200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