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학교로 달려라.

햇살가득한 2008. 5. 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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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과하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

지난주에는 어른이 스트레스를 주더니 이번주에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준다. 토한 녀석 걸 치워야 하지 않나 금요일엔 끝끝내 바지에 큰 실례를하는 녀석에, 점심시간에 친구와 대판 싸워 놓고 혼날까봐 도망치는 녀석......

분위기 있는 내 목소리는 갈라지는 박경림의 목소리가 되어 가고 목에서는 피까지...

그러더니 드디어 몸살이 난 거였다.

금요일 초저녁부터 뒤척이다가 토요일 학교를 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내가 안 가면 부모 없는 아이들처럼 또 천방지축 뛰어 다닐까봐-사실 아이들은 담임 없는 걸 더 좋아한다.-출근을 하기로 했다.

목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험이나 잔뜩 봐야지 하면서.

그런데 아이들을 보니 또 그런대로 목소리를 내도 될 거 같았다. 진도도 늦었겠다 또 진도를 나가고 말았는데...

집에 돌아와 다시 이불을 싸 잡고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 늦으막하게 일어났는데 목소리만 좀 이상했지 열도 내렸다. 창밖을 보니 오랫만에 일요일의

햇살이 연초록빛 이파리들을 더욱 싱그럽게 비춰주었다.

자전거를 타 말아?

몸도 멀쩡한 게 아니면서 그러다 더 아프면 어쩌려고?

두 마음이 서로 다투고 있다.

일단 중립을 지키려 느릿느릿 움직이며 몸의 상태를 봐 가기로 했다.

가다가 힘들면 되돌아 오지 뭐.

평소 나 답지 않게 위안을 하며 거울 앞에 앉았다. 간밤에 핀 열꽃으로
얼굴 여기저기가 빨갛게 툭툭 불거져 있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프를 두르고 찬 공기를 맞지 않기 위해 마스크
를 쓰고 그리고 헬맷을 쓰고 나섰다.

언니는 "이제 좀 살아났나 보지?" 한다.

김밥 한줄을 사서 자전거 핸들에 대롱대롱 매달고 우리 나라에서 두 번
째로 아름답다는 학교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통일로는 차들이 많이 다니고 차량에 비해 길이 좁기 때문에 위험한 도
로라서 한눈을 팔 수 없는 길이다.

오른쪽에 붙은 왕눈깔같은 나침반의 진행 방향은 N 극쪽이다.

등에서 땀이 난다. 간밤에 뒤척이며 나던 그 땀과는 다른 땀이다.

'요놈들 느이들이 살아 남나 보자.'

몸 속에 있던 감기 바이러스가 땀으로 다 배출되는 듯하다.

월롱역을 지나고 파주역을 지나자 지붕은 너와에 흙집을 지은 음식점을 발견하고는 샛길로 빠졌다.

헬맷에 눌린 머리를 내보이고 싶지 않아 헬맷을 쓴 채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흙이며 나무, 너와 등을 물어 보았다.

기둥이나 서까래를 쓰고 남은 나무를 쪼개 너와를 만들었다고 했다.

모퉁이로 슬쩍 사라진 시골길은 묘한 끌림이 있다. 마치 여기를 돌아오면 무엇이 있을까요? 스무고개 하듯 물음표를

던지며 잡아 끄는 손길처럼 말이다.

집에서 나설 때는 몸 생각해서 가장 빠른 통일로로만 달려서 갔다 와야지 했었는데 또 시골길의 꼬임에 빠져서

차 소리가 점점 나지 않는 골짝까지 들어왔다.

전원 마을이 있었는데 흙집 구경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세워 두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집 밖 구경 좀 하겠노라고 했는데 사실 속 마음은 안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남의 사생활을 깨는

것 같아 겉모양과 정원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잔디가 깔려진 마당 귀퉁이에 금낭화가 꽃을 조롱조롱 매단 채 있다.

다시 자전거를 되집어 탔는데 자전거 체인이 빠져 있었다.

한참만에야 손에 시커멓게 기름을 묻혀 가며 제 자리를 잡아 놓고나니

에라 좀 쉬어 가자는 심사에 핸들에 매달려 있던 김밥을 꺼내 먹었다.

자전거를 되짚어 타고 다시 통일로로 들어섰다.

뒤에서 요란스럽게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놈은 분명히 트럭이다.

이 놈들은 항상 위협하듯 자전거 탄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거나
빵~ 큰 소리를 내지르고 달아난다.

그 큰 덩치가 지나갈 때는 자전거도 휘청거린다. 그래도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헬맷을 써서 그 머리를 감추었기에

망정이지 예전에 긴 머리로 자전거를 타면 트럭은 일부러 검정색 방귀를 뀌고 달아 난 적도 꽤 되었었다.

드디어 문산까지 다 왔다.

아름다운 학교는 분명히 오래 된 아름드리 나무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서 아파트가 밀집된

시내 중심으로 들어가는 반대편 방향으로 길을 들었다.

초등학교는 전체 학급 수가 약 20여 학급 정도 될까한 그런 규모에 예전 내가 다닐 때 보았던 독서하는 소녀 상,

이순신 동상, 그리고 우리가 타고 놀아서 목이 부러졌던 기린상 등이 있었다.

오래된 학교라 정원수가 무게 있게 심겨진 그런 학교였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에 못미쳐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또 나를 잡아 끄는 학교 뒤로 난 시골길이 있기에 자전거 기어를 잔뜩 올린 채 따라 가니

오래 된 벚나무가 길 옆으로 마중하듯 서 있고 그 길 끝에는 학교 사택이길 바라는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의 정원이 온통 철쭉으로 심겨 있다.

일주일 정도 더 있으면 붉은 색 철쭉이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아이 머리 마냥 고른 키로 피어 날 것이다.

내가 학교 사택이길 바라는 이유는 그런 예쁜 정원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살 수도 있을테니까.

비가 온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난다. 소년이 소녀를 비 안 맞게 옥수숫대 안쪽에 앉히고 자기는 그냥 나 앉아 맞는...

나도 나보다 자전거를 어느 집 처마 밑 안쪽에 세워두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이미 목적지는 다 왔고 되돌아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차들이 질주하기에 신경 바짝 쓰고 달려야 하는 그 통일로로 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샛길로 가기에는 법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럴러면 시간이 몇 배나 더 들기에 통일로를 주 도로로 하고

마을로 들어 갔다가 통일로로 타기를 반복하기로 했다.

농로로 들어가 미나리를 한웅큼 뜯어 저녁 때 미나리 부침을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아저씨는 당신네 미나리가 많으니 뜯어 가라고 하신다.

집에서 흘러 나오는 생활 하수가 논으로 들어 가는데 그 도랑에 미나리를 심었다.

미나리는 물을 정화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들었다. 미나리 부침에 미나리 무침까지 해 먹을 정도로 많이 뜯어서

자전거에 매달고 다시 통일로를 탄다.

맞바람이다. 제엔장! 내리막길에서까지 패달을 밟아야 할 정도로 바람이 세다.

오르막이다. 힘을 빡빡주며 오르다가 우연히 오른쪽을 봤는데 '지금 하는 일은 다 조국을 위한 길'

이라고 큰 바위에 써 있지 않은가? 푹 웃음이 나왔다. 통일로는 '초아봉사'니 하는 글들이 많이 써 있다.

아무래도 전방이다보니 군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글들일게다.

전신에 땀이 흥건하다.

40km를 5시간만에 달려 아파트 문을 열었다.

우선 씻고 그리고 조카를 위해 미나리 부침을 부쳐 먹고 이렇게 컴 앞에 앉아 있다.

몸살이 더 날지 모르겠다며 설거지를 해 놓지 않고 엄살을 피우며 앉아 있는데 글쎄 내일 출근을 못하는 수가 생기는 건 아닌지.

자고 나 봐야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