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황토 둑길에서 곡예를

햇살가득한 2008. 5. 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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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12분에 금촌역에 도착한다는 기차에서 손님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깨몽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떠났지만 혹시 화장실에라도 들렀을까 싶어 조금 더 기다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래, 내가 너무 멀리 살고 있지.
배고픔을 못참는 나는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며 김밥이랑 시켜서 한참 먹고 있을 때였다.
"여기 문산인데요."
세 정거장을 더 간 깨몽님의 전화였다.

잘 닦여진 회색 아스팔트로 엉덩이를 안장에 밀착하고 달릴 수도 있었건만 우리는 논을 마주하고 있는 하천둑을 따라 달리기로 했다.
짙은 황토 길 위로 자동차 바퀴 흔적이 두 줄로 깊게 패이고 그 안에는 빗물을 헹건하게 담고 있었다.
하천이 넘치기에는 둑이 그렇게 높지 않아도 될 터인데 아무래도 군사의 목적이라고 둘은 생각했다.
미끌거리는 황토길을 나와 깨몽이 앞서거나 뒷서거나 하며 달려(?)가는데 순간 핸들을 잘못 꺾었다간 진흙탕으로 빠지거나 둑 아래로 굴러 떨어질 판이었다.
헬맷 쓴 것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작년에 큰 사고가 난 뒤부터는 헬맷을 꼭 쓰고 타는데 나만 써서 좀 미안하네요."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고 코 앞만 바라보다가 모래가 섞여 물기가 없는 땅을 보면 고속도로 나왔다고 신나했다.
그러면서 여유가 생기니 하얀 왜가리가 하천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있다가 모이를 콕 쪼아 먹는 것도 볼 수 있었고 고요를 낚듯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모습도 구경하며 내달렸다.
주변에 낚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번 따라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풀 이름이 수박풀, 참외풀이거든요. 줄기를 뽑아 들고 손바닥에 치면서 수박냄새 나라, 참외냄새 나라 하면 진짜로 냄새가 나요."
시골에서 편한대로 붙여진 엉터리 풀이름도 떠올려 보고, 뽀빠이님한테 사진 보내야 한다면서 한컷 찍기도 하면서 논둑길을 달려간다.
차길을 달릴 때와는 달리 시골길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김밥 먹다가 전화를 받아서 도시락에 사온 김밥을 내밀었더니 깨몽님 안먹는다.
난 그냥 마른 땅에 앉아서 낚시하는 사람들 한가롭게 쳐다보면서 집어 먹으면 좋을 거 같은데.
곡릉천을 계속 따라가면 전망대가 나오겠지만 비가 올 것 같은데다가 돌아가게 되어서 포장 도로를 탔다.
보리밥집에 들러 보리 비빔밥을 시켜 먹으며 레지나에게 문자 보내서 살짝 약도 올려주고.
고개를 올라 오른편에 있는 궁시 박물관으로 향했다.
우리 나라 삼국시대 것은 물론 아프리카, 인디언 등의 활과 화살을 수집해서 전시해 놓은 곳이다.
몇 대에 걸쳐 가업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 3월초에 왔을 때는 금잔디가 깔려 있더니 초록색 잔디가 쪽 고르게 깎여 있다. 1년생 백일홍, 메밀, 목화, 도라지 꽃 등 갖가지 귀한 꽃들이 정원을 채우고 있다.
고인돌모양으로 생긴 정원석에 걸터 모여 앉아 도시락 까먹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김밥 먹을 생각은 왜 못했을까?)
박물관을 나오며 오던 길을 되짚어 나와 전망대 쪽으로 향해야 하건만 늘 나를 잡아 끄는 시골길의 호기심에 반대쪽으로 향했다.
전망대로 향한다.
날도 흐리고 비가 조금씩 뿌려서 강물인지 안개인지 그냥 뭉뚱그려 희뿌옇게 보인다.
'임진강에 안개가 끼는 이유'라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난다.
빗방울 떨어지는 간격이 좁아졌다.
우리는 서둘러 오던 길을 되짚어 오기로 했다. 지름길인 차도를 타면서.
빗방울이 헬맷에 모였다가 안경으로 떨어지면 아랫입술을 위로 오므려 빗방울을 떨어내며 내달린다.
혹 서울 가는 기차가 끊겼으면 어쩌나. 버스는 자전거를 실어주지 않으니 이 위험한 자동차 운전 실력으로 구파발까지 태워다 줘야 하나. 그럼 돌아 올 때는 어쩌지? 혼자서 차를 몰아 보지 않은 나는 걱정까지 하면서.
금촌역에 도착하자마자 차 시간표부터 훑어 봤는데 세상에, 11시까지 기차가 있는 거였다.
내리는 빗물에 자전거 두 바퀴가 안겨준 흙탕물까지 홈빡 뒤집어 쓰니 물에 빠진 생쥐가 달리 없다.
기차표를 끊어 한장 건네니 이미 깨몽님 손에도 한장 들려 있었다.
가져온 우산을 건네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깨몽님에게 어자피 젖은 몸 초연히 자전거 타고 가겠노라고 하면서 철길로 나서는 깨몽님을 배웅하고 돌아섰다.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서 날 괴롭히는 감기란 놈이, 비에 맞았다고 좋아하며 열이란 친구를 동반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면서 패달을 밟았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이래서 좋다. -삿갓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