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오늘은 소라나 빼 먹을까나...

햇살가득한 2008. 5. 17. 20:51
오늘은 소라나 빼 먹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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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렸다.
어제까지 원피스를 만든다고 펼쳐 놓은 재봉을 오늘은 엄마가 커튼을 만든다고 재봉틀 앞에 앉아 계신다.
재봉은 내가 산 신형이라서 엄마한테 이것저것 기능을 알려 드렸다.
홍천에서 비오는 날에 엄마는 농사일을 못하니까 모아 두었던 천 쪼가리들을 꺼내 베갯잇이나 밥상보 등을 만드셨다.
난 엄마 발치에 앉아 더 작은 쪼가리 천이 나오면 그걸 모아 인형 치마를 만들고 돈 주머니를 앉아 꿰매곤 하였다.
그런데 이젠 내가 엄마 재봉질을 돕고 있는 것이다.
우체국에 갈 일이 있어서 나서는 김에 맛있는 거 사다 준다고 했더니 동생은 물 많은 자두를, 엄마는 복숭아를 사오란다.
오늘은 파주 장날이 아닌데 복날이라 그런지 조그맣게 장이 섰다.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시장으로 들어선다.
얼마전 한정식집에서 입안에 감기는 단호박죽 먹은 게 생각 나 저녁거리로 그것을 하나 사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초록, 빨강, 주황, 노랑색이 한 봉지에 든 파프리카 색깔이 예뻐서 마땅히 요리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데도 한 봉지 사 넣고.
자두, 복숭아도 한 바구니씩 사 담았다.
어젯밤 늦게 일을 보고 들어 왔더니 현관문을 열자 마자 밤늦게 돌아다닌다고 비난을 퍼부은 엄마랑 오늘은 말다툼을 좀 했다.
엄마는 걱정돼서 그런거겠지만 흥청망청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비난부터 들으니 나도 기분이 상한 터였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잠잠해져서 설거지를 마치고는 엄마한테 슬쩍 다가갔다.
칠순이 한참 넘은 엄마의 젖은 그저 흘러내린 아랫배와 다름없이 축 늘어져 있다.
엄마의 약점인 그 젖을 잡았더니 역시 놀라며 나를 �느라 손을 허우적거린다.
"내가 딸이니까 그런 얘기도 해 주지 며느리 같으면 그러겠어?"
했더니 엄마는 금방 풀려서
"나두 니가 딸이니까 그러지 며느리 같으면 그러겠냐?"
하신다.
엄마한테 애들처럼 칭얼거리고 싶을 때, 또는 엄마가 이 딸년한테 서운한 적이 있을 때면 난 엄마 뒤에서 측면 공격이니 정면 공격이니 하면서 엄마의 젖을 건드리는 거다.
징그럽다고 손사레를 치면서 팔장을 끼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 엄마도 내 그 애들같은 짓궂음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빨갛게 양념한 꽃게장을 보니 게장을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난다.
점심 때 엄마랑 손을 뻘겋게 칠하며 게장을 발라 먹으리라.
메밀 껍데기로 속을 하고 베로 베갯잇을 입힌 베개를 언니 거랑 엄마 거 두 개 샀다.
난 아직도 내 편한 것이 우선이어서 며칠전 엄마가 내 베개가 높지도 않고 시원하겠다며 탐냈을 때도 선뜻 내 주지 않고 오늘에서야 사게 된 것이다.
며칠 전 민물 다슬기 얘길 했었다.
홍천 앞 개울에서 다슬기 잡아서 빼 먹던 얘기.
그래, 오늘은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에 �기지 않고 식구들 둘러 앉아 바늘 하나씩 잡고 일없이 소라나 빼 먹으리라.
자전거 양쪽 핸들에 걸쳐 놓은 장 본 것들이 제법 무겁다.
홍천에서 우리 엄마 별명은 '막차'였다.
닷새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이것저것 해 이고 시장바닥에 펴놓고 팔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오셨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늦은 엄마의 귀가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나와 내 동생은 늘 막차로 돌아오실 줄 알면서도 해가 지기전부터 동네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으례껏 한 대를 보내고 막차가 뿌연 먼지를 내며 신작로를 달려오면 보따리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빼앗듯 받아 내려서 서로 차지하려고 애쓰며 집까지 들고 갔다.
사촌 남동생은 그 자리(정거장)에서 고모님의 보따리를 풀어 본다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다.
보따리도 꼭 엄마가 풀었다. 평소에 힘을 못 쓰는 엄마는 장 본 보따리로 엄마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같았다.
엄마가 매듭을 푸느냐고 시간이 걸리는 것 조차도 나에겐 보따리 안의 기대로 매듭 푸는 시간이 조급해 질 정도였으니까.
엄마의 보따리는 늘 나를 흡족하게 만들지 못했다.
나는 주로 언니 것을 물려 받았고 남동생은 남자라서 새로운 물건을 사 주기에 나의 시샘은 늘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군것질 거리가 나오는 날이면 대 만족이었고 엄마의 그 보물이 담긴듯한 보따리 때문에 장날이면 늘 엄마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실은 엄마 마중이 아니라 보따리 마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전거 양쪽 핸들에 이것저것 잔뜩 걸어 놓으니 자전거 타기가 수월하지 않다.
출렁거리는 짐 때문에 페달이 앞으로 굴러갈 때면 짐도 살짝 걷어차면서 페달을 밟아야 했다.
핸들을 꺾다가 올망졸망한 장 본 것이 종아리를 찌른다.
뭐가 찔렀을까? 꽃게장?
집에 들어서서 나도 엄마처럼 시장바구니, 비닐 봉지에 담긴 물건들을 하나 하나 주욱 늘어 놓는다.
"이거 엄마 베개. 시원하겠지?, 이건 파프리카라는 건데 꼭 피망 같지? 색깔이 이뻐서 사왔어. 엄마 나중에 또 씨 심는다고 할까봐서 잘 익은 걸로 골라 왔는데, 싹이 날려나 모르겠어......"
종아리를 살펴 봤더니 피가 난다.
휴지로 쓱 훔치고는 밥상을 편다.
'꽃게장, 기다려라. 네 다리를 아작아작 씹어 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