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늦은 시간 버스안에서...
햇살가득한
2008. 5. 17. 21:33
늦은 시간 버스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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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김삿갓
- 조회수 : 31
- 02.04.27 11:07

학원 수업을 마친 것은 밤 10시가 좀 넘어서였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된 수업으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몸을 추스리며 버스에 올랐다. 내 몸을 부축해 줄 자리는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려 오는데 버스는 급정거를 않고 천천히 횡단보도에 멈추어 선다. 오늘은 왜 예민하게 이런 광경이 보이는 걸까? 다음번에도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지자 버스는 얌전한 아이마냥 조용히 횡단보도 앞에 멈추에 선다. 이제 막 초록등으로 바뀌어서 무시하고 지나갈만한 그런 흔한 상황이었건만, 신호등을 지켜야 하는 너무나 당연한 규범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버스안이다. 나는 운전석 앞 공중에 매달린 거울을 통해 운전사를 살펴본다. 굵게 파마를 한 여기사다. 사소한 규범을 지키는 당연한 것의 낯설음에 약간의 피로가 가시는 듯 하다. 버스는 다시 초록 불빛의 제지로 횡단보도에 멈추어 섰다. 저쪽에서 건너오는 사람과 이쪽에서 건너가는 사람이 가운데 에서 서로 교차하여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널 즈음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휘적이며 반쯤 뛰사시피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간다. 신호등은 이미 빨간 불로 바뀌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고 차들은 튀어나올 듯 대기하고 있다. 불안하다. 아직 대여섯 발자국을 더 걸어야 안전지대인 인도에 도착할텐데. 그는 여전히 지팡이를 휘적이며 걷고 있다. 그 때 신호등에 걸려 있던 노란 승합차가 달려 나온다. "......." "쯧쯧쯧" 버스안에서 혀를 차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녀도 나와 같이 가슴 졸이다가 1초를 다시 몇으로 나눌 그런 짧은 시간에, 차가 몸보다도 먼저 나와 있는 그의 지팡이를 스쳐 지나가는 걸 보고 안도의 탄식이 새어나왔으리라. 그는 못다 건넌 횡단보도를 허둥대며 마저 건넌다. 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1초를 먼저 가겠다는 조급함으로 생명을 맞바꾸는 현대인들은 과연 무엇에 떠밀려 사는지 의문을 던져본다. 점자 보도 블록을 따라 걸어 횡단보도 앞에 남들처럼 같이 서 있다가 신호등이 바뀐줄도 모르고 서 있던 시각장애인. 뒤늦게야 알고 허둥지둥 건너다가 이런 아슬아슬한 순간을 그는 몇 백번을 경험했을까? 그는 또 세상의 높은 벽 때문에 얼마나 안으로 파고 들며 살아갈까? 요즘 아자여 게시판엘 보면 자전거를 좋은 걸로 샀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달리는 속도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다정히 걷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지나가겠다고 크락숀을 울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피곤을 풀어줄 잠의 늪으로 빠져들기 위해 난 펼쳐진 이불속으로 다이빙하듯 미끄러져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