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한 잔 술에 취해서

햇살가득한 2008. 5. 23. 21:42

술을 마시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오소소 일어선다.

 

산 숲에서 햇빛 못 보고 자란 미나리는 단맛이 난다.

아니 어쩌면 그래 그런 게 아니고 미나리를 감싼 풀들의 잎들이 여러 향들을 섞어 단맛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미나리에 오이와 양파를 조금 채 썰어 넣고 골뱅이를 얇게 저며 무쳤다.

고추의 매운맛보다, 식초의 신맛보다 미나리의 상큼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친구를, 술을 부른다.

멀리 있는 친구는 전화통을 통하여 귓전으로 달려 왔고 잘 익은 포도주는 문 밖에 있다.

 

조퇴를 했다.

어제부터 목이 칼칼해지더니 열이 났다. 

그래도 간간히 큰 소리 낼 목을 아끼지 않았더니 오늘은 말을 조금 해도 되는 것으로 수업을 바꿔 해야했다.

좀 일찍 돌아와 쉬어야지 했는데 또 호미를 들고 이 구석 저 구석을 다닌다.

언제 던져 뒀는지도 모르는 호박씨에서 싹이 소복히 올라 왔길래 그 놈들을 여기 저기 분가시켜 주었다.

한 고랑은 무, 한 고랑은 알타리무를 같은 날 심었는데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은 나는 이래저래 기억이 없어서

어느 것이 무고 어느 것이 알타리무인지 모르겠다. 이파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 쪽은 반질반질 한 것이 솜털이 없고

한 고랑은 약간 거친 것이 솜털이 잔뜩 나 있다.

작년 김장 때 무청을 엮었을 때를 떠올려 반질반질하고 솜털이 없는 것이 무라고 생각하고-자꾸 깜빡빰빡하지만 눈썰미 하나는 아직 청춘이다. - 솜털이 있는 무를 뽑았다. 알타리무라면 밑동이 주머니처럼 동그랗게 돼야 할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무를 잘못 뽑은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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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한 단 정도를 뽑아 다듬고 소금을 뿌렸다.

상추를 몇 잎 뜯어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고

갓은 솎아주기를 하면서 갓김치를 담글 생각이다.

 

방울 토마토 2, 큰 토마토 2개를 심었는데 조롱조롱 열매를 달아서 쇠막대를 박아 지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녀석들은 바람이 불 때는 내가 매어준 끈으로 허리를 단단히 묶고 쇠막대기에 의지해서 바람을 견뎌내 줄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고 빨간 토마토를 방울방울 보여 줄 것이다.    

 

열이 나며 몸살기운이 있는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애들은 쉬는 시간에 놀고 있는 모습마저 카메라에 담고 있을 정도로 사랑스러운데

윗대가리가 염장을 지른다.

봉투를 잘 챙긴다는 걸 보니 살살 긁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맘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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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인지 그냥 무인지, 토마토, 호박, 보랏빛으로 활짝 피어난 작약...

이런 것들은 내게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쇠막대기 노릇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