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나를 버리려 길 떠나는 도보여행

햇살가득한 2008. 6. 23. 19:52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오늘 하루는 "나를 버리려 길 떠나는 도보여행"으로 하렵니다.

왜냐구요?

어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서 언성을 좀 높였었거든요. 

그래서 더욱 아침 알람에 신경을 썼습니다.

'알람 울릴 때가 됐는데...'

몇 번이나 깨었었는데

이런, 월~토요일까지만 설정돼 있네요.

맘이 갑자기 급해집니다.

차를 가지고 이천까지가서 대충 구석에 박아 놓고 버스 터미널로 가니 막 출발하는 버스,

안~~~돼.

장호원까지 버스타고 택시타고 한 시간을 기다려 감곡IC에서 빠져 나오는 빨간 차를 만났습니다.

아침을 바나나 네 개로 먹고 걷는데 아, 탄수화물이 그리워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일케 잘 걷는 것이야.

마치 빨치산에 투입돼도 될 듯한 걸음걸이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두 시간쯤 걸었을까?  

길옆 집에서 물을 얻어 마시며 앉아 있는데 그냥 여기서 하루 놀다가 가면 어떨까 하는 꾀가 납니다.

고관절도 아파오는 것이 허벅지도 뻑뻑하고, 발가락도 아픈 것이...

우선 할아버지께 하루에 버스가 네 대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놀다가 버스를 타고 뒤따라 가자.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버스는 얼마쯤 가다가 되돌아 간다네요.

에고. 걷는 수밖에.

할아버지는 살구 주워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히야, 이 얼마만에 직접 주워보는 살구야. 

한 입 물어보니 예전 맛 그대로입니다.

깨진 살구를 발라내가며 먹다보니

길을 따라 그냥 걷고 있습니다.

살구의 힘!

마침 "집으로"라는 영화에 나옴직한 버스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기에 비켜 주었습니다.

"길은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꼬불꼬불 길은 이어지고 

모퉁이로 꼬리를 살짝 감춘 길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몽골의 어느 호수를 걸어 들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바닥을 드러낸 충주댐이 나름 운치 있네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꽃을 잔뜩 달고 있는 풀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고

나 잡아봐라 하고 달려 가고 싶지만 쫓아 올 사람도 없는지라 그냥 좀 걷다가 되돌아 오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리를 깔았습니다.

정성껏 챙겨오신 여러 님들 도시락 잘 얻어 먹고, 커피까지 신발을 내팽개치며 한 잔 얻어와서는 마시는데,

아, 오늘은 왜 이리 받기만 하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

아무 생각 없이 걷기.

다양한 생각들을 가진 분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들으며 걷고 또 걷고.

막판 걸죽한 막걸리까지 한 컵 쭉 들이켜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살구 주인 할아버지댁에 놀러 간다고 했는데 언제가 되려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키로 걷기를 마무리 하고보니

내 인내력을 테스트 할 만큼 힘든 것도 아니었고

또한 내가 버려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