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햇살과 맞장뜨다

햇살가득한 2008. 7. 14. 22:47

햇살이 가장 강한 여름.

과거에 동아제약에서 주최하는 국토대장정에 신청하고 싶었지만

햇살 아래 걷는 것이 영 엄두가 안 났고

한비야씨가 국토 종단 했다는 것도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뿐.

에어콘을 틀고 그늘로 찾아드는 여름 한낮에

아스팔트에서 훅훅 올라오는 열기와

어디 숨길 데도 없이 알몸처럼 그대로 받아야 하는 강한 여름 햇살에 맞설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자, 나길도에 가입하고부터 슬슬 그 햇살과 맞장을 뜬다.

간밤에 마당에 작은 골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큰 비가 왔다.

당연히 오늘은 구름을 모두 걷어 갔고 찌를 듯한 햇살이 내리쬔다.

인제군 방동약수터 입구.

애초부터 트럭을 탈 생각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흘린 트럭이 운행된다는 사실.

그러잖아도 요즘 슬슬 왼쪽 무릎이 시위하듯 쿡쿡 쑤시는데, 에라 잘 됐다.

트럭은 꼭대기 지점을 얼마 안 남겨 두고

자주 시동이 꺼졌고 뒤로 밀렸다.

내려 걷기 시작한다. 

사슴지기님이랑 친구, 나 셋이서 마냥 걸었다.

꼬부라진 모퉁이를 돌고,

자전거를 피해 비켜주고, 오토바이에게 환호성을 올리고, 

썬그라스 낀 살갗하얀 여자는 

이 더위에 뭔 생고생을 하냐는 듯 표정없이 밀짚모자를 쓴 여자를 내다보고

이 여자는 이런 흙길은 한 평짜리 기계에 올라 타서 발가락조차 꼼짝않고 이동하는 것과는 비길바가 아니라며 까만 차 안에 든 여자를 쳐다본다.

내막길을 걷고 또 걷고...

강아지꼬리같은 꽃에게 눈길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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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동교를 건널 때 어떤 사람은 더 가야 한다고 해서 마냥 또 걷고

그러다가 다음사람과 너무 떨어진 것 같아 휴대폰을 열었으나 안테나가 세워지지 않아

좀 쉴 요량으로 개울로 내려왔다.

철갑같은 등산화를 벗고 물로 들어가니

시원함에 발 무게가 종잇장 같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니 다리 밑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가보다.

뭐 그렇게 들었다는 사람도 있어서 우리 셋은 개울가에 도시락을 폈다.

소꿉놀이하는 초등생마냥

조금조금 담긴 음식물을 납작한 돌멩이를 식탁삼아 올려 놓고 

찰방찰방 발을 담그고 먹기 시작하는데

어라~ 저 우리 팀 아냐?

다리밑에서 밥을 안 먹고 오는가보지?

우린 다시 도시락을 챙겨 대열에 합류했다. 

꿀맛같은 도시락을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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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분교로 들러 다시 도시락을 펴고

학교를 둘러 보았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등하교길을 지켜봤을 나무는 더 이상 아이들을 맞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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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재잘거림 대신 백합들의 유쾌한 수다가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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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실에 전교생이 썼을 교사는 꺼멓게 썩어 가고

체육시간, 호루라기를 불며 아이들을 이끌었을 선생님이 올라섰던

100년 됨직한 나무는 또 수년에 걸쳐 썩으며 흙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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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서는 분홍색을 좋아하는 계집아이가 폴작대며 고무줄 놀이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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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단체 사진을 찍는군'

늘상 벌어지는 일들에 무관심한 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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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켠에 잘 씻어 덮어 둔 밥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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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무료함을 달래 줄 교실안의 만화책이 편하게 머물다 가는 야영지임을 알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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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이어진 길은 사람을 유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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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물도 만나게 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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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누우떼처럼 용감하게 물을 건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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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할 때 왜 걸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로 한다.

무념무상.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걷는 것 또한 생각 있는 걷기일텐데. 

그럼?

그냥 걸릴 것 없이 자유롭게.

낯선사람과 같이 걷게 되면 이 이야기 하고

저 사람이 다가오면 다른 화제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또 아무도 없으면 그냥 혼자 걷고...

 

걷기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하산을 하고 나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마침표를 찍는듯한 습관이 있는지라

순대와 족발의 걸찬 안주에

막걸리를 넘기는데

족발의 그 기름기를 감싸줄 무언가 있었음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렇게나 떨어져 자라고 있는 손길 못받은 들깨가 있다.

엉덩이를 들 필요도 없이 한잎 뚝 따서 바지에 쓱쓱 씻어 족발을 올려 놓는데

야, 이거 너무 터프한 거 아냐?

막걸리 한 잔에 먼지묻은 족발 깻잎쌈 한 입.

깻잎의 진한 향기가 야생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늘 야생을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야생에 길들여지지 못하고

또 도시 속으로 데려다 줄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