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칸 깍두기 공책
"어디 얘기 하지 말어라. 챙피해서..."
엄마는 남들에게 알려질까 입단속부터 시켰지만
난 엄마가 창피한 게 아니라 내가 창피해졌다.
그래도 딸은 버젓이 대학이라는 데를 나오고 그것도 국문과를 졸업하고
성당으로 주민자치센터를 찾아다니며 한글 가르칠 봉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내 어머니는 한글을 제대로 몰라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면
받침이 틀려서 웃음이 나오는 때가 있다.
아래 사진은 순간 종이가 얇아서 뒤집어져서 비친 건 줄 알았다.
울 엄마는 이씨는 죄다 이렇게 써 놓았다.
일제시대에 여자로 태어나서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던 엄마는
어깨 너머로 한글을 얼핏 익히셨는데
정작 그 자식들에게는 교육열이 높아 밭일의 품팔이를 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내 주시고는 당신이 대학생이 된 것 마냥 좋아하셨다.
직장을 다니며 거의 공짜이다시피한 대학원때도 그랬다.
돈이 없을까마는 엄마는 그예 백만원을 마련해 주셨다.
한 번은 내 주고 싶었노라고.
올케에게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올케의 운전면허 학원 등록비를 내 주는 것으로
엄마는 자식에 대한 공부열을 비추기도 하였다.
오늘 8칸 깍두기 공책과 진하고 굵게 나오는 3B 연필, 지우개를 하나 샀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우개, 연필 등이 집안 구석 어디쯤 찾아보면 나올 법도 하지만
새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호기심이 많은 엄마를 레스토랑으로 불러 냈다.
식탁 위에 그것들을 펼쳐 놓고
이름칸에 엄마 성함 석 자를 지워지지 않게 볼펜으로 적어 넣었다.
한 장을 넘기니 담임선생님 성함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적으라고 하였다.
"엄마, 내가 엄마네 반에서 1등 하게 예습 복습 잘 시켜 줄게."
엄마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그래, 나도 하면 잘 하지."
하신다.
우리 모녀는 서양식 국수-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 먹으며 점심때를 보냈다.
엄마는 또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거다.
빨간 국수가 하나도 안 맵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