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무념무상의 걷기

햇살가득한 2009. 1. 24. 14:47

 

2009. 1. 17.

겨울 장기 도보를 며칠 따라갔다 와서 7번도로 따라 동해안으로 쭉 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차에

다른 까페에서 통영에서 모임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는

나를 기억해 냈고 문자를 보냈다.

모임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냥 먼길 나선 김에 섬이나 좀 돌아 다녀야겠다.

통영에서 충무로 김밥을 먹고 

 

  

갖가지 해산물 회를 먹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2009. 1. 18.

한산도를 걷고 싶었는데 11명 중 나 혼자만의 생각.  

 

 

바위에 붙은 굴을 칼로 까 먹다가 연장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피).

뭐. 그래도 좋다. 바닷가에 와서 보는 것보다 경험하는 게 좋으니까.

해물 뚝배기를 맛나게 먹고 일행들과 헤어졌다.

 

 

2009. 1. 19.

그루님과 둘이서 거제 자연 휴양림에서 자고 학동몽돌해수욕장에 차를 놓고

해금강을 거쳐 여차, 몽돌 해수욕장을 갔다 오기로 했다.

해금강까지 걸어가는 길은 동백꽃이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해금강에서 그녀의 친구가 온다길래 차를 얻어 타고 차 있는 곳까지 왔다.

통영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오자는 말에

발목도 아프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후회할 일이 생길 줄이야.

결국엔 여차, 홍포 해수욕장엘 못 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여행지에서는 목적지에 관한한 내 생각을 먼저 하자는 것.

다시 자연 휴양림에서 1박을 했다. 

 

 

2009. 1. 20.

학동해수욕장에서 아침을 먹고 헤어졌다.

혼자다.

여차,홍포 해수욕장은 밤에 차로 돌았기에 장승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빛을 보라.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왜 그랬을까?

혼자라는 사실이 긴장감을 가져오나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화두가 하나 있긴 했다.

제자리에서 맴돌 뿐, 해결되지 않는 화두다.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김밥을 사 먹는데 

자유를 좋아하는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여행을 하고 싶긴 한데 할 수 없으니 저녁을 먹고는 계좌번호를 찍어 달라신다.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께 길을 물으니

왼쪽을 가리켜 주신다. 내가 보기엔 오른쪽이 지름길이건만.

결국 내 판단이 맞았다. 왼쪽길을 하염없이 돌아 갔다. 다음엔 바쁜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으리.

 

 

장승포까지 갔으나 짝수 시간에 배가 있다 한다. 전화로 물었을 때는 매 시간마다 있다더니.

옥포까지 가서 부산항 배를 탔다.

부산에 아는분네 들러 몇년 전 치수를 재 놓고 며칠 전에 주문한 생활 한복을 입어 봤다.

검정누비치마에 꽃분홍 저고리.

찜질방으로 갔다.

경상도 사람들의 억양 때문에 뭐라 할까봐 빨래거리를 살짝살짝 빨아 널었다.

때 타올이 없어 사려고 하니 자기 것을 내 주며 쓰라고 하는 아줌마도 있었건만.

 

 

2009. 1. 21.

찜질방에서 미수가루로 아침을 때우고

한복에 맞는 신발을 사러 시장으로 갔다.

노리개도 사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온갖 생선을 구경하고.

같이 간 분 아는분네 들러 차도 얻어 마셨다.

차를 좀 담아 가겠다고 했더니 아무말 없으시다.

알고 보니 고 작은 차후에 들은 게 10만원어치나 된다 하신다.

이것저것 세 종류를 마셨는데

다른 분은 무슨 차가 이리도 맛있냐 하시는데

난 그 맛이 그맛이다.

앞으로는 찔레꽃차, 뽕잎차를 만든다고 푼수를 떨지 말아야겠다.

용파리 대장님이 부산에 오셔서 점심은 대장님한테 얻어 먹었다.

아랫녘은 확실이 물가가 싸다.

땅값이 싸서 그런가보다.

 

차도 한 잔 마시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는 길에서 대장님과 헤어졌다.

걷기는 틀린 거 같고

간밤에 찜질방에서 한 잠도 못 자서

울산 친구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대학때 스스럼없이 어울려 다니던 남자친구다.

내가 전화를 하면 부인이 받아서 한동안 수다를 떨다가 친구를 바꿔주는,

부인까지도 허물이 없는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피곤이 밀려와 좀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2009. 1. 22.

친구는 출근을 했다. 

세상에 찌들지 않고 퇴근후 테니스를 치는 것으로 인간 관계가 전부는 그는

경상도 남자가 그렇듯 잔정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정이 깊고 반듯한 친구다. 

그런 남자 곁에 상냥하면서 집안 꾸미는 걸 좋아하는 친구 부인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림 똑 부러지게 하는 닮고 싶은 주부이다.

나를 위해 주먹밥을 깻잎에 말아 도시락을 싼다.  

 

 

그러잖아도 다니다보면 점심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 난감한 적이 있는데 내 마음을 앞질러 가는 친구 부인은 확실히 잔정이 깊은 여자다.

우리 둘은 아침상을 치우지도 않고 그간 쌓였던 수다꺼리를 한참이나 눈물을 찍어내며 나누다가 일어섰다.

그녀가 건넨 깻잎 도시락에 미숫가루, 짐이 된다는데도 쌌다가 하나 더 얹은 귤에, 따뜻한 인삼차와 빵 2개. 

노인 요양 과정을 이수했다는 그녀는 과정중 하나인 유서 쓰기를 했다 한다.

그것을 중학생이 된 딸이 보고 눈이 퉁퉁 부어 있더란다.

불안불안하기만한 청소년들의 탈선이 이 집에서는 셋이 똘똘 뭉쳐 한사람처럼 굴러 간다.

전날 짐을 줄이겠다고 한복 택배를 부치며 함께 부친 짐이

그녀가 싸 준 먹을 거리로 더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정자 해변으로 향했다.

정자에서 감포까지 걸어가기.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바닷가를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막고 있어서 산길로 이어지는 길에 버스를 탔다.

그리고 감포에 도착하여 경주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는 인터넷에서 그의 목공예 작품과 직접 지은 집을 사진으로 보고

작년에 그것들을 구경하러 한번 내려온 적이 있었다.   

폐가 되는 듯하여 감포에서 방을 구하겠다고 했더니

"글두 예까지와서 차라두 한잔하고 가야잖겠능교."

하면서 문자를 보내왔다.

혼자 여행할 때 희끄무레하게 어스름이 몰려오면 귀소본능이 생긴다.

쓸쓸해 지기도 하고 외로움도 함께 밀려 온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할까.

민박집 주인은 괜찮은 사람일까.

방은 따뜻할까.

저녁은 뭘 먹어야 하지?

두려움이 미안함을 눌러 그의 집 쪽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탔다.

부부가 내려 준 곳은 불국사 입구였다.

교원공제회관이라고 눈에 확 띄는 건물이 있어 속도를 내어 가 봤더니

나 같은 객이 하룻밤 묵을 곳은 못 되는 곳이었다.

회원이면서도 한 번도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교원공제회.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걸어 봤지만 개인은 받지도 않는댄다.

그럴 거면 뭣하러 회원증은 만들어 줬냐고?

신발 치수가 나랑 같은 왜소한 그가 트럭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셍떽쥐뻬리의 비행기가 맘에 들어 작업실에 비행기와 프로펠러를 매단 그는

난로에 장작을 열심히 넣고

난 혹사한 무릎을 달래려 불을 등지고 앉았다.

천장에 창문을 달아 줄을 잡아 당기면 도르레에 연결된 창문이 열려 담배연기가 바로 빠져 나갔다.

생활고에서 벗어난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큰 사람이 될 듯한 이 남자는

만들어 놓은 가구를 시집보낼 요량도 없으면서

돈이 안 될만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낙동으로 가구를 만들더니

황포 나룻배모양의 다탁에 아이디어를 쏟고 있었다.

내가 작년에 만들어다 준 찻잔 받침에는 다기가 얌전하게 올라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저녁을 얻어 먹고 결국엔 하룻밤을 묵었다.

온돌방이라 화상을 입을 듯 하고 이불 속에서 나오면 알래스카이고 

적도와 알래스카를 왔다갔다하며 잠을 잤다.

 

 

 

2009. 1. 23.

 

간밤에도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과장되어 서걱였다.

흐린날씨에 바람은 불고 날씨마저 추웠다.

 

속정있는 경상도 남자는 이정표만 세워둔 버스정류장에 나를 떨구고 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버스 오기를 기다리다가 감포까지 차를 태워다 주었다.

감포.

오래 전,

남자친구와 어판장에서 회를 떠 와 바위에 걸터 앉아 먹으며

야트막한 황토밭을 옆에 둔 집에서 하룻밤 묵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친구와 앉아 있던 바위는 어떤 바위일까?

친구는 떠나고 바위만 파도를 맞고 있었다.

감포에는 오징어가 풍년이었다.

 

 

동행이 한 사람 더 있다면 오징어 회를 떠서 먹어 보련만

눈만 호강하면서 어판장을 지나왔다.

정보통신부 산하 우체국.

걷는 내 정보를 조금만 흘리자.

pc에 앉아 몇줄 글을 흘리고는 다시 걷는다.

대게 찌는 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가고

과메기가  덕장에 널려 있다.

오늘 점심은 대게 두 마리에

대게 뚜껑에 밥을 비벼 먹으리.

횟집 문을 여니 혼자라며 난감해 한다.

혼자 다니는 불편함은 이런 거다.

배를 채울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음식점은 모두 횟집이고

하여 차와 식사라는 간판이 붙은 곳엘 들렀다.

찹쌀 수제비라고 하나

찜질방에서 먹는 미역국과 다를바 없다. 

이름이야 어쨌든 상관 없다.

그러나 먼 길 걷는 이에게

미역을 잔뜩 넣고 정작 중요한 찹쌀은 몇 알 없다는 거.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켜 국물 한 숟갈 남기지 않고 후식도 마다하고 일어섰다.

사람의 그릇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며칠을 걸어 다니는 사람에게 한 숟갈 정도의 찹쌀을 아껴 뭣에 쓰겠다고.

맘은 상했지만 사람을 만난 터라 피난민 패션은 하나 찍어 둬야 할 듯 해서 셔터를 부탁했다. 

 

 

 

전엔 속도가 제법 났는데 무릎이 아픈 것이 더 이상 무리를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바람도 점점 속도가 나고 볼은 따갑다.

해님과 바람의 내기 대상이 내가 되는 듯하다.

옷을 여미고 잠바를 치마처럼 둘렀건만 바람이 파고 든다.

그만 돌아가야겠다.

구룡포를 몇 키로 앞에 두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차를 세운다.

차들이 그냥 지나친다.

복면을 벗고 나니 부부가 탄 차가 태워 주었다.

포항 입새에 내려 주어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특산물을 사는 버릇이 있는 나는

과메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굳이 억지로 생각하려 하지 않은 단조로운 여행은 

차의 엔진이 토해내는 힘겨움에 묻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