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정선에서 삼척까지 걷기(8)

햇살가득한 2009. 5. 17. 22:39

하늘이님과 함께 삼척에서 강릉까지 가자던 약속을 문어의 꾐으로 배신하고

문어를 배불리 먹은 뒤(첨이여, 이리도 맛난 문어를)이지님과 버스를 타고 추암에 도착.

(버스를 타러 가는 길과 내려서 걷는 길이 차라리 해변을 따라 걷는 걷보다 더 긴 것이 배가 아픔)

바다를 보며 낭만을 즐기던 하늘이님과 만났다.

셋이서 동해시까지 걸어가기.

강릉에서 4년 반을 산 이력이 있기 때문에 언저리 동해까지는 몸이 아는지라 밤이 되었는데 천곡동(묵호항 이전)까지 걸어갔다.

시간은 이미 밤 9시.

저녁을 먹어야 할텐데.. 우리가 찜한 곳은 바닷가의 작은 절 감추사.

이미 민박집이 아닌 그냥 민가집에서 자는 것에 맛들인 하늘이님.

어케 감추사 절에서 하룻밤을 잘 요량이었지만

이런, 절에 불은 켜 있는데 인기척이 없다.

산길따라  연등이 늘어선 길을 슬프게 걸어 오면서  

빨리 위에 뭘 넣어줘야 위가 시위를 안할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하루에 네 번 드세요."

약사의 말에 제 때에 맞춰 하루에 두번도 지킨 적이 없다. ㅎㅎㅎ

동해시의 대형마트에 가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왔다.

그걸 길거리 벤치에 펴 놓고 먹는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겠지만 여럿이 하니 이것도 꽤 괜찮구먼.

박스 몇장 깔아 놓고 걍 여기서 노숙을 해 볼까 하는 객기도 생긴다.

이지님은 초등학교를 찾아 어디론가 가시고

하늘님과 나는 모텔엘 들어갔다.

깨끗한 잠자리, 샤워부스, 보송보송한 수건.

간만에 전신을 씻고 나니 날아갈듯 하다.

다음날 새벽.

일정은 이랬다. 묵호항에서 나는 오징어 회를 사서

햇반을 사서 데운 뒤 가져간 초고추장에 지천에 널린 나물을 뜯어 회덮밥을 먹자는 것.

중학교 이후에 쪽지시험조차 컨닝하지 않는 꼿꼿함으로 이제껏 지내왔는데 상추를 5장 서리했다. ㅎㅎㅎ

그리고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강원도 사투리로 씅애똥이라고 하는 걸 뜯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 붙이기는 하늘이님이 잘 한다.

할머니한테 이런저런 말을 붙이는데 할머니댁이 조기 눈에 보이는 조 집이란다.

그 다음 작업은 나.

"할머니 쌈거리를 좀 뜯었는데 할머니 댁에서 좀 씻어도 될까요?"

할머니 댁에서 쌈거리를 씻고 마당에 널어 놓은 미역도 조금 얻었다.

묵호항.

오징어가 2마리에 만원이다. 3년전 20마리 만원인걸 생각하니 살 엄두가 안난다. 거기다가 손질값을 또 따로 줘야한다.

그 대신 점심은 물회를 먹기로 했다.

묵호항 벤치에 햇반, 초고추장, 쌈거리 등을 꺼내놨다.

 

 

입이 미어져라 먹어댔는데 옆에 앉은 할아버지 부러워하신다.

"한 입 드릴까요?"

밥을 먹고 인생사 2시간을 떠들었나보다.

배낭을 꾸려 어달항으로 출발.

어떤 할머니 미역을 건지고 계시네.

호기심 많은 우리 둘.

담을 넘어 바닷가로 갔다.

 

 

점심 메뉴를 성게 비빔밥으로 바꿔 봤지만 성게 껍데기만 몇 개 보일뿐. 바다는 심하게 메말라 있었다.

슬쩍 할머니 옆에 앉아 말을 붙이는 하늘이님.

그 옆에 초고추장을 꺼내 놓는 나.

우리는 또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미역줄기를 얻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간식거리로 산 빵을 하나씩 나눠 드리기도 하면서. 

한 숨 잤으면 딱 좋겠다.

동글동글한 돌멩이들을 엉덩이로 비비적거려 고르게 한 뒤 누워 모자를 얼굴에 가린다.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여보 따랑해. 우럭 잡은 거 회 떠서 갈게. 여보 따랑해."

잠이 확 깼다. 70이 넘은 할머니의 애교스런 전화소리에.

다시 짐을 꾸렸다.

대진항 물회집엘 들렀는데 영 맛이 아니다.

큰 그릇을 달래서는 김을 부숴 넣고 회덮밥으로 비벼 먹었다.

다시 출발.

 

 

망상해수욕장까지 걸어갔다.

이곳에서 4박 5일 걷기는 마쳐야겠는데 몸이 왜 이럴까?

마냥 걸을 수가 있을 듯 하다.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왔다.

내 청춘과 추억이 서린 곳.

 

하지만 이별을 알리는 버스 시간표처럼 이제 강릉은 점점 내 기억속에서 빛이 바래져 가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려면 1시간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혼자 앉아 이번 여행을 되돌아 본다.

30대까지의 여행이 경치좋은 곳으로의 떠남이었다면

역시 40대의 여행은 사람과 함께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