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세미원의 바람을 하염없이 맞고 앉았다

햇살가득한 2009. 8. 30. 00:46

백련이 피는 계절에 두물머리에 다녀오고 싶었다.

이번 방학엔 연수와 조카아이의 출산으로 윤하를 봐 주느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8월초에 피는 연꽃이련만 개학이 며칠 남지 않은 조급함에 서둘러 두물머리로 차를 몰았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바람도 좋은 날이었다.

 

 

 

연못가에 엉덩이만 붙일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머리칼을 만지더니 등짝을 훑고 겨드랑이를 빠져나가  

연못으로 몰려가서는 연잎들을 마구 뒤집어 놓는다. 

이발한 잔디 너머로 강가 부들이 자라고

강건너 퇴촌 집들이 그림속 풍경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연꽃잎은 이미 져 버리고 수술 마저 다 사윈 씨방은 자랑처럼 남아 

하늘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씨앗을 쏟아낼 것이다.  

 

 

 

 보일듯 말듯 가녀린 물잠자리가 풀잎 끄트머리에 앉아 쉬고 있다.

 

 

 

연잎사이에서 바람과 숨바꼭질하는 분홍빛 연은 

뒤늦게 태어나 아쉬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꽃무릇.

꽃무릇이 빨간색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까만색이었다면 아가씨의 긴 속눈썹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을이다. 

거두고 마무리하는 계절.

말 수는 적어지고 속살을 찌우는 계절이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