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방석만들기)
전문성을 살리자는 얘긴데.
비유가 맞을라나..
"아무개 씨"
택배 아저씨가 부를까 귀를 열어 두고 어제도 하루를 보냈건만 꽝이다.
주문한 책이 오면 오늘부터 공부를 해 볼라 했는데.
내일은 오겠지.
그럼 오늘은 뭘할까?
나무로 집도 짓고 가구도 만드는 집엘 갔다가 방석이 있음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방석을 만들어 주겠다고 일방적인 약속을 해 버렸다.
황토 염색한 천.
몇 년 전, 머리수건부터 발끝까지 황토 염색 옷을 입고 한 학부형이 찾아 왔었다.
"어머, 나두 이런 거 좋아하는데."
했더니 그 어머니, 그런 날 반겨하며 며칠 후 염색한 천을 꽤 많이 보내왔다.
이불 해 덮으라고.
황토 염색 천만 하면 밋밋할 거 같아 자투리 천을 꺼내 본다.
감물 들인 천은 재작년 제주도 여행 가서 갈옷 사면서 가방을 만들까 하여 자투리를 얻어 온 거다.
가위는 이빨 나간 거 버린 걸 칼 가는 곳에서 2천원 주고 갈아 왔더니 이 나간 부분에서 한 번 멈춰야 하지만 아주 쓸만하다.
재봉.
단촐하게 살고 싶은지라 물건을 웬만하면 사지 않는데
재봉은 1년을 고민한 끝에 사게 되었는데 취미 생활하기에 괜찮은 물건이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그 집 의자가 6인용의자를 만든댔으니까 방석도 6개가 필요할 터.
황토염색한 천은 씨실과 날실 사이에 황토가 끼어 바느질 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전에 조카 아이 옷 만들다가 포기 했기에 방석을 1개만 시험삼아 해 보자.
바늘땀을 크게 조절해 놓고 박았더니 앗싸, 잘 나간다.
샘플로 쓸 방석(이것도 학부모님이 같이 주신 것).
몇년 동안 구겨져 있던 천을 다리미로 펴고
자투리 천도 다리미로 펴서 자르고
드르륵 박는다.
늘 만만히 보고 덤볐다가 애 먹기 일쑤인 재봉질.
벽시계를 보고 시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 1시 반.
방에 들어 와 확인해 보니 역시 1시 반.
이제 겨우 재단만 했을 뿐인데...
점심을 먹어 말어. 한번 필 꽂히면 밥도 건너뛰며 하는 나.
머리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묶어서 올렸지만 푹푹찌는 날씨에
땀이 줄줄 흐르고 쉰 냄새까지 난다.
가위를 들기 전 생각을 했었다.
쉽게 몇 만원 주고 사서 보내줄까.
아님 사는 것 보다 세련되고 예쁘지도 않겠지만 하루종일 땀 흘리며 만들어줄까.
전문가가 만들었으면 몇 분이면 후딱 끝났을 일.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의사가 직업적으로 진료 해 주면 재미는 없잖아?
에고에고, 허리야.
하야 완성된 방석.
3시 반이다. 밥 먹어야지.
사다 놓은 지퍼가 없어 내일은 지퍼를 사서 마저 완성해야겠다.
재단과 포인트도 다 박아 뒀으니 낼은 좀 수월하겠지.
밋밋하긴 하지만 나무와 흙으로 지은 친구네 까페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친구야, 깔고 앉아 궁디 시리지 말어.
다음날 모두 완성(찍고 보니 올망졸망한 강아지새끼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