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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나로그가 좋다

햇살가득한 2011. 1. 21. 12:20

 

파주에 와 있는 동안 인터넷을 일시정지했다.

그러나 소소하게 뭘 찾아봐야 할 일들이 생겼고 도서관에 가서 그걸 해소하면서 인터넷이 생활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성남에 가는 길에 인터넷을 부활할까하여 컴퓨터 전원을 켰으나 불이 들어 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 방 정리를 하면서 뚜껑 깨진 불안한 노트북을 옆으로 밀어 놓기만 했다는데. 

A/S센터에 들고 갔더니 하드마저 나갔다고 했다.

십 여년 전부터 저장해 온 일기, 소소한 일상의 글들, 사진들...

복구할까 포기할까 망설이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10여년의 생활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마냥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송창식의 노랫말에 그런게 있다.

관심있는 이성에게 떨리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가 받자마자 끊어 버리는. 

그러나 요즘엔 발신자 번호가 떠 버리고 

약속장소에 나가 한 두시간을 기다리는 무모함(?)도 사라져 버렸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어도 전화를 해서

"어디야?"

"응. 정문"

하면 그 친구도 저쪽에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이 쪽으로 걸어 오고 있다. 

기다릴 줄 모르고, 빨리 확인하려 들고, 빨리 결론 내리려 한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일기를 타이핑을 했다. 

필름 카메라였을 때는 인화를 해서 앨범에 꽂아 두었지만 성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를 두 번 바꾸는 동안 

단 한 장도 인화를 해 두지 않았다.

네비게이션도 그렇다.

길 찾아가는 즐거움을 왜 기계에게 양보하냐구. 여유가 있으면 핸들 꺾이는 대로 가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하는데 네비는 대체로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주기는 하지만 그런 여유는 없다.   

언젠간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따로 저장을 해 둬야 했지만 누굴 탓하리오.  

어제 지난번 것보다 반쪽만한 노트북을 사왔다.

이동에 간편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보니 아나로그가 좋다는 내 말이 어불성설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