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이 땡기는 저녁
가을인가봐.
어, 그러고 보니 오늘이 9월의 마지막 밤이네.
막바지 더위라고 그제는 에어콘을 틀게 만들더니
어제 비가 내리며 완전히 여름은 물러났나벼.
오늘 아침엔 제법 바람까지 불어
출근을 하다가 다시 들어와 얇은 오리털 파카를 챙겼지.
늘 정성껏 한다고 해도 여기 저기 구멍을 내는 나는
오늘도 결국 본의 아니게 구멍을 내고 말았으니.
윗 기관의 탓도 있지만 이럴 줄 알고 미리 일 처리 하지 않은 나의 탓도 있으니.
문제는 내 실수를 내 자신은 그다지 관대하지 않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나만 힘든 거지 뭐.
어스름 저녁이 오는데 골목길에서 애들이 인사를 한다.
학원에서 끝나서 막 집으로 돌아가는가 보다.
울반 부회장 아이가 엄마랑 붕어빵을 먹으며 인사를 한다.
그 애 엄마만 없다면 하나 달래서 먹을텐데.
엄마는 내일 반아이들 간식을 넣어 주겠다고 했다.
부회장 턱을 내는가 보다.
출출한데 붕어빵이나 한 봉지 사 먹을까 두리번 거리는데 장수가 눈에 띄지 않고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저만치서 멈춘다.
달려가 잽싸게 탔다.
역시 활동성은 운동화가 최고다.
졸음이 쏟아진다.
늘 집 지을 터를 쫒아 여기 저기 뒤지다가 잠이 모자란다.
이런 열정과 집중이 있었다면 늘 얘기하지만 동시통역사가 됐어도 진작에 됐어야 한다.
영어? 전혀 못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분다.
좀 이른 듯 하지만 역시 얇은 오리털은 잘 입고 온 것 같다.
칼 퇴근을 하지만 오늘은 1시간20분이나 늦게 퇴근했다.
날도 어둑어둑한 것이 바람도 스산한 것이
먹자골목을 지나 오는데 삼겹살이 땡긴다.
집에서 구워 먹자니 기름 튀고 상추 준비해야 하고, 좀 번거로워서 고깃집에라도 갈까 하다가
1인분은 안 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다가 집에 가서 구워 먹자.
동네 정육점에 갔더니 주말 세일이란다.
사서 맞은편 가게에 가면 숯과 상추를 공짜로 준댄다.
그렇지만 1인분은 안 구워 준댄다.
들고 집으로 왔다.
옥상에서 이파리마저 열매에게 다 빼앗겨 작아지고 있는
우리 엄마의 축 늘어진 젖같은 깻잎을 몇 잎 따 왔다.
땅콩 간 것을 넣고 쌈장을 만들고 마늘도 몇 쪽 저며 구웠다.
냉장고를 열어 적포도주도 한 잔 따라 마신다.
아, 근데
쌈박질이나 하는 드라마랑 마주 앉아 삼겹살 먹으려니 참 맛 없다.
이건 불만의 표출인가?
배는 부르건만 먹다 남은 빵도 먹고 배도 하나 깎는다.
시험이 내일 모레.
오늘은 보던 책 반을 다시 복습을 해야 했었다.
집에 들리면 도서관 안 갈 것 같아 책을 다 싸 갔는데
퇴근무렵 통화한 땅주인의 얘길 듣고 지적도 등이 궁금해서 공부가 안 될 것 같았다.
어릴 때나 어른이 돼서도 난 역시 공부는 하기 싫어 하는군.
모레 시험이 끝나고 나면 공부나 이런 거 하지 말아야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부족한 인생이야.
사실 뭐.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잖아.
노안이 와서 안경을 벗고 책을 봐야 하는 이 나이에 말야.
그리고 난 또 두 가지 한꺼번에 못한다는 거.
내일부터는 스산한 10월이다.
좀 쓸쓸해지는 계절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