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휴일의 소소한 일상

햇살가득한 2012. 4. 7. 22:59

도시의 집이라는 게 현관문 열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지 따뜻한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햇빛이 땃땃하게 들어와 동네 산책을 하자고 나섰는데

오랫만에 탄천에 가니 바람은 아직 싸늘했지만 버들개지는 솜털을 맘껏 올리고 있었다.

길을 틀어 야산밑의 밭쪽으로 걸어가니 샛길이 막혀 있기도 하고 

큰 개들이 쇠사슬을 길게 끌며 위협하며 다가오기에 밭두렁을 걷는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자라는 초록색 시금치를 따는 모자 쓴 아낙이 있어 인사도 한다.  

"시금치가 참 달겠어요."

대꾸가 없다.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가 사는 건 온통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야채인데 노지 시금치를 무쳐 먹자는 생각이 들어 되돌아 갔다.

"시금치 이천원어치만 파세요."

했더니 그러라고 하는데 아낙이 아닌 아저씨다. 살결이 여자처럼 고운데다 여자 모자까지 쓰고 있었는데.

남자는 두 다리를 뻗고 부엌칼로 시금치 밑동을 도려 내어 바닥에 엎어 놓기를 계속했다. 손을 뒤로 짚고 허리를 펴는 것으로 보아 허리가 무척 아픈 듯 했다.

"제가 좀 따 볼테니 10분만 쉬세요. 촌에서 살아 봐서 잘 해요."

했더니 아저씨 칼을 주지 않는다. 따 놓은 것 2천원어치 챙겨가라는 말 밖에.

떡잎 집에 가져와봤자 노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할 것같아 아예 밭에 앉아 다듬는다.

"촌 어디서 살았었는데요?"

"강원도요. 전 아줌마인줄 알았어요. "

"아줌마라면 시금치 사러 안 왔겠죠?"
"......"

"뭐 아저씨면 어때요. 어머니가 길에서 파는 건데 휴일이라 도와주러 왔어요."

그나저나 지갑을 뒤져보니 만원짜리 두 장, 오천원짜리 한장 밖에 없다. 아저씨는 5천원어치를 사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그러란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양을 사서 집에까지 걸어갈 생각과 반찬할 거리가 남아 돌면 처지 곤란하게 되어 요리 숙제처럼 되는 게 싫어서 굳이 2천원어치만을 사야 해서 동전주머니까지 뒤졌더니 710원이 나온다. 참 난감하네. 아저씨는 다듬어 놨으니 다 가져가라고 한다. 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에 혹시 또 지나가게 되면 작은 돈 많이 가져 올게요."

했다.

나도 이제 완숙한 아줌마가 다 된 것일까? 밭에 들어가서 야채를 사지 않나. 그것도 동전을 털어서 말이다. 딴에는 직거래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싸게 샀다고 좋아까지 하면서. (나중에 삶고 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쬐끔 실망. 두 접시)

  문제는 담아갈 비닐봉지가 마땅치 않아 밭고랑을 넘고 굴다리를 지나 마트까지 와서 봉지 때문에 다른 과일을 샀다는 거.  

  살짝 데쳐서 고추장, 된장, 들기름, 마늘 넣고 무쳤더니 단맛이 난다. 이 나른한 봄날, 초록색 철분이 몸속으로 들어와 얼굴에 화색이 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