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게
3층 세입자가 나갔다.
나간지도 벌써 2주째건만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는 정해지지도 않고 새롭게 꾸며서 세를 놓아야 하건만 우리가 2층에 사느냐 아니면 3층으로 올라 가느냐를 고민하다가 3층으로 올라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생각같아서는 주중에 일을 벌렸으면 좋겠지만 퇴근하면 저녁 해 먹는 것도 일이라 대충 끼니를 때우고나면 일을 하기가 싫어진다.
지난 주에는 화장실 청소를 했고, 이번주에는 페인트를 사다 놓고 며칠을 보내다가 오늘 드뎌 페인트 뚜껑을 열었다.
처음 해 보는 페인트 칠.
흰색은 너무 창백해 보여 황색 물감을 하나 사서 섞었다.
페인트:신나는 3:1 비율로 하니 적당했다. (청국장을 다 먹고 난 비닐 컵-나는 재활용의 천재-을 계량컵으로 해서 페인트 9컵에 신나 3컵을 섞었다.) 황색 물감은 정말로 조금 넣어 색깔을 조정해야 한다. 애초에 흰색이 가실 정도로만 색을 섞으려고 했다. 약간 노란 빛을 띈 색깔이 나왔다. 페인트 가게에서 돈을 주면 섞어 준다는 데 뭐 돈까지 주고 섞을 일 있나, 파전 할 때 밀가루 반죽하듯 구석구석 저어주면 되는데.
우비를 한 번 입었던 걸 버리지 않고 뒀더니 그걸 입고 하니 페인트 묻을 일이 없었다. 모자까지 쓰고 하니까 보온도 되고 1석 2조였다. 정작 가리지 않은 얼굴에 허옇게 페인트가 튀는 게 문제였다. 1회용 마스크를 쓰고 했어야 했는데. 직장 서랍에 있는 걸 갖고 와야지.
냄새가 큰 문제였다. 더군다나 추워서 문을 닫고 했더니 나중에 하품리 아저씨가 와 보고는 중독된다고 하여 문을 활짝 열어놨다.
3층 집수리 견적을 뽑아보니 7백 3십만원이 나왔었다. 애초에 그 돈을 들여 수리를 할 생각이었으나 오빠가 집에 돈 돌이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오빠 말을 듣기로 했다.
그 중 인건비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내가 하기로 했다.
페인트칠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도 조절이 잘 안 돼서 진하고 흐린데가 있었고 툭하면 얼굴에 튀고 주르르 흐르고...
냄새 맡으며 이 일을 하느니 차라리 대통령 선거 때 투표요원으로 일하고 일당을 받으면 그걸로 사람을 사서 페인트 칠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국회의원 선거할 때 일당을 받고는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차라리 익숙한 그런 일이 낫겠다. 역시 페인트칠은 페인트공에게, 나는 내 일을. 전문적인 자기 일을 하는 게 능률면에서 좋다. 물론 새로운 일을 해 본다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강릉에 황토집 구상을 하면서 그걸 내 힘으로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테스트 심정이 든지도 모르겠다. 집짓기를 페인트 칠과 견주다니.
작은방, 큰방, 목욕탕 순서로 칠했는데 페인트가 남아 있어서 한번씩 덧바르니 얼룩덜룩 골고루 발라지지 않았던 페인트 칠이 제법 깔끔하게 된다.
다 바르고 쳐다보니 훌륭하다.
저녁 때 한 번 더 가서 쳐다보니 냄새도 많이 빠진 것이 흡족하다.
엄마는 오늘따라 일 가서 언제 오시는지 모르겠단다. 엄마가 봐줘야 할텐데 말이다.
도배, 장판을 하는 김에 단열 처리를 하려 했더니 견적을 다시 내러 왔다.
단열처리 하는 데만 36만원이 추가로 더 든다.
방문 페인트 칠한 걸 보시라며 단열지를 붙여도 되겠다 싶으면 사다가 붙이겠다고 했더니
지물포 사장님은 단열지를 자기네가 납품 받는 단가에 쓰라고 한다.
그래서 본드포함 15만 2천원에 단열지를 배달 받았다.
내일은 그걸 자르고 오려서 본드칠 해서 벽에 붙여야 한다. 사장님 얘기로는 그걸 붙이면 훨씬 단열이 잘 된다고 하는데 안 붙인 것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문제는 본드칠을 해서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데 며칠 좀 있다가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내 노력을 들여 21만원을 절약해야겠다. 이렇게 절약한 돈 뭐에 써야 값지게 쓰게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