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여간의 종종거림과 추억(장구연수 후기)
진작에 장구 연수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신청을 해 놓고도 은근 걱정이 됐었네요.
금요일마다 한국화도 배워야 하고,
화요일에는 6교시를 마치고 피곤함에 차를 세워두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20분이나 지나 버리고...
거기다가 11월부터 시.도 파견에 고민을 좀 하고, 귀촌 할 땅을 알아보고 땅주인을 만나 계약을 하고 등기소를 들락거리고,
거기다가 31일 마지막 날 아침엔 발목까지 삐고...
여러 일들이 두 달만에 일어난 일이네요.
잘 하려 하지 말고, 내 힘 닿는데까지만 하자.
신조대로 그렇게 하다보니
이런, 글도 처음 올립니다. 불량 학생이지요?
장구에 관심을 가진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지요.
한 학년에 70여명이 전부인 시골 학교에 40명 가량인 우리반이 농악을 하게 됐어요.
여자 처녀 선생님이 장구, 꽹과리, 징, 북, 소고, 12발 상모 등을 혼자서 가르치셨지요.
모내기철에 "한서제"가 있었는데 우리가 연습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으면 교장선생님이
하드(아이스크림)을 사오셔서 잣나무 그늘에서 우릴 부르곤 했답니다.
우리학교가 군에서 1등을 했을 때 교장 선생님은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기를 들고
군 소재지 골목을 누비며 짜장면 집으로 가셨지요.
1등 기념으로 농기를 세워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학부모들이 지금의 우리 또래의 모습이었죠.
그만큼 세월이 흐르면서, 또 초등교사가 되고 아이들에게 악기도 없는 맨손인 강강술래를 가르치면서
그때의 여 선생님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운데 파란색 옷입은 분)
선생님은 키도 작아서 경연대회에 같이 뛰셨지요.
그런 열정이 있는 분이었어요.
2년을 연속 1등을 하고보니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농악 얘기가 꼭 나와요.
힘 좋아 북을 쳤던 코찔찔이 아무개는 듬직한 아빠가 되었고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옥이는 장구를 들고 뛸때면 흘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곤 했었지요.
나는 키가 작아서 소고를 했었어요. 상모도 잘 돌렸었는데.
이번의 장구 연수는 그 때의 선생님의 열정과 추억이 연수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연수로 장구를 제대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좀 더 목소리를 다듬어서 노래부를 일이 있으면 민요도 한 번 뽑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선생님들 애 많이 쓰셨구요. 특히 고혜경 선생님 많이 많이 감사드려요.
그리고 올해는 강릉으로 파견을 갑니다.
혹 강릉 주문진으로 여행오시는 선생님 계시면 연락 주셔도 좋습니다.
바닷가 소나무숲에서 야영도 괜찮고 또 그때까지 작은 집을 짓게 되면 차 한잔 나누지요.
<쾌지나칭칭 나네> 개사
집 | 을 | - | 지어 | 보 | 세 | 집 | 지 | 어 | 보 | - | 세 |
남향 | 으 | 로 | 창을 | 내 | 고 | 군불 | 지 | 펴 | 방 | 덮히 | 고 |
차 | 를 | - | 끓 | 여 | 마 | 셔 | - | 보 | - | 세 | |
찻 | - | 물 | 끓 | 는- | 소리 | 눈 | 오 | 는 | 소 | - | 리 |
사 | 락 | 사 | 락 | 세 | 월 | 가 | 는 | 소 |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