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난 이제 책을 읽을 수 없는 줄 알았다. 책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책을 펼쳐 들면 서너 장을 넘기는 동안 눈은 글씨를 따라 가는데 머릿속은 온갖 딴 세상을 날아 다니고 있으니 책을 읽어도 남는 것이 없고 감동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책을 안 읽겠다고 한 게 더 정확히 말해서 공부를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한 게 2008년 대학원 논문을 쓴 뒤였다. 그리고 전원생활로 관심을 돌려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고-늘 하는 얘기지만 그 시간에 공부를 했다면 동시통역사 자격증이라도 땄을 듯한-하는 사이에 책은 더욱 멀어지고 글 쓰는 감각마저 잊어버렸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며 머리가 점점 굳어지고 안구 건조증으로 인공 눈물을 넣어줘야 하는 불편함도 책을 안 읽게 되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책이 안 읽힌다.'이런 생각이 굳게 자리 잡았을 지금,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독서에 대한 전환점을 가져온 책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두 권을 하루 한 권씩 연이어 이틀만에 다 읽어 버렸으니. 삶과 죽음의 에피소드(직접 경험한 의사인 작가와 한 단계 걸러진 독자인 나와의 거리로 인하여 멀어진 관계)에 책 옆에 인공눈물을 놓아 두기는 커녕 손수건을 대신하여 눈물을 찍어 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일을 하는 의사이기에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극적이었다. 어쩌면 죽음을 맞닥뜨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긴장감을 갖고 읽게 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는데 특히 폐암 말기로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아니 있다고 했지만 실험대상이 되는 듯해서 그 고통스러운 검사와 처치의 과정을 거부하고 집에서 매운 것이 안 들어간 음식과 진통제, 그리고 언니가 전신을 주물러 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해 드릴 게 없는 엄마의 고통을 책속의 어떤 대상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때론 흐느낌과 통곡이 왔다고 생각이 된다.
엄마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6주째 혼자 집에서 휠체어로 생활하는 이제는 위장장애가 생긴 힘든 내 처지도 슬픔의 한 몫을 차지 했을 것이다.
남이 먹은 식판으로 밥을 타서 먹을 정도로 힘겹게 의사가 된 작가의 친구가 결국은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목을 매는 상황을 읽으면서 한 가정이 건강해야 전체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의사들에 대한 이전의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긍정으로 돌아섰다는 것 또한 큰 수확일 수도 있겠다. 무릎수술을 하기 전에 나야말로 '의료쇼핑'을 했었다. 그리고 다들 큰 서울에 가서 하라 했지만 강릉에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실력은 좀 뒤질지 몰라도 양심적으로 정성껏 봐주는 곳에서 하자는 생각에 의사를 믿어 버렸다.
사람의 수 만큼 삶의 모습도 다양하다. 잘 사는 길? 매 순간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