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란...(매실 장아찌 담기)
습관이란...
어찌보면 세시풍속이랑 같은 것이어서 제 때에 뭘 해야 한다는, 습관을 넘어선 일종의 강박관념이랄까.
비가 그쳐서 차 운전 연습을 해 볼까 해서 나선 길. 목발을 짚고 시장엘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엔 떡을 두어 개 사 올 생각이었는데 시장이라는 데가 꼭 뭘 더 사게 만드는 곳이어서 시골 아주머니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따 온 듯한 빨간 자두를 한 바가지 샀는데 저 쪽에서 매실을 파는 거다.
작년에 담은 매실 액기스도 있어서 올해는 장아찌만 좀 담아 볼까 하는데 그간 매실 철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누렇게 변해 하고 있었다. 그래도 좀 굵은 매실을 향해 절뚝절뚝 걸어 갔는데 매실 반 자루만 샀으면 딱 좋겠구만 아줌마 한 자루를 판다.
아줌마가 차에 실어 줄 때도 몰랐다. 내려서는 집까지 어떻게 들고 가지? 박스에 담긴게 아니라 질질 끌고 갈 수도 없고.
집앞에 차를 세웠는데 저 쪽에서 어떤 아저씨 빈손으로 걸어오고 있어서 도와 달라 했다.
"죄송한데요. 제가 사고 났다는 거 생각 못하고 매실을 샀는데 들 수가 없어서요..."
엘리베이터까지만 들어 달라고 했더니 역시 아저씨들은 융통성이 없다. 전에 아줌마는 괜찮다 괜찮다 했는데도 방안까지 짐을 들어 주더니만. 아저씨는 딱 엘리베이터 안에 매실 자루를 옮겨 주셨다. 물론 감사한 마음이지.
헉, 그런데 이렇게 많은 매실을 어떻게 다 까지? 일을 아주 사서 하는구만
문제는 구석에 있는 항아리를 한쪽 다리로 서서 끌어 내어 씻을 수 없다는 거다. 포기하고 작은 항아리에 여러 개 나눠 담기로 했다.
손이 부르터 가며 7키로 정도 씨를 발려 냈나보다. 내가 매실 장아찌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해 본 건 처음이다. 그래, 맛있게 되면 조카들한테도 나눠주고 아는 사람들 조금씩 나눠주면 되지 뭐.
설탕에 절였다가 노랗게 삭으면 국물을 빼내고 고추장에 무쳐 참깨를 뿌려 먹을 날을 기약하며... 하지만 목발에 휠체어에 너무 힘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