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둥지

집을 팔다

햇살가득한 2018. 2. 25. 01:26

엄마가 재작년 돌아가시고, 나도 강원도로 이사를 해서 더 이상 도시의 집을 놔둘 이유가 없었다.

강원도에서 도시로 이사가서 줄곧 엄마는 모란에 살았다. 오빠가 이사를 가고 난 뒤에도 엄마는 시골로 가자고 해도 모란 여기 저기를 사시느라 엄마를 더 이상 이사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산 집이었다.

엄마가 옥상에 올라가 꽃을 돌보던 곳, 그리고 30여년을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던 곳, 그리고 아파서 119에 업혀 내려온 뒤 다시 못 올라간 그 집.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걸 힘들어 하셔서 돌침대를 사 드렸더니 좋다고 해서 좀 더 일찍 못 사드린 걸 후회하게 만든, 그 침대에 누워 있던 그 집. 

중학교 때 이사가서 비비적거리게 만든 성남이라는 도시는 집을 팔면서 이제는 추억의 도시가 될 것이다.

월요일 집 계약서를 쓰러가는김에 작은언니, 큰 언니 다 보자고 했다. 성남에서 잠잘 곳도 없고, 엄마가 아끼며, 새벽에 양말조차 신지 않고 나가서 비지를 얻어다가 썩혀 밭에 거름으로 뿌려주던 그 밭도 남에게 넘기고 이젠 집마저도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성남으로 이사를 오고 한 두해 지나 갓 시집간 작은언니도 성남으로 이사를 왔다. 참 어렵던 시절이었다. 작은 언니는 은행동 꼭대기에서 코흘리개들이 좋아할 몇 종류 안되는 과자(비닐 봉지에 든 걸 손으로 밀어 먹는 쥬스)를 파는 구멍가게를 했었고 연탄가스를 먹고 상원초등학교 쪽 아래로 내려왔다. 모란시장에서 포장마차도 했었다. 

 큰언니도 성남에 와서 살아보겠다고 이사를 왔는데 한 두 해 만에 파주로 돌아갔다. 요즘에 안 일이지만 형부는 성남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교통이 좋지만 그때는 왕복 4시간 이상이었을테니.

역마살 많은 나는 성남을 기점으로 여기 저기 찍으며 다니다가 오빠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엄마랑 목욕탕이나 같이 다닐까 하는 마음에 성남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전화로 팔겠다고 한 그 집을 산 거고. 

오빠가 집을 팔고 성남을 떠나자 엄마는 친구들 있는 곳에 남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전세든 월세든 옮겨 다녀야 했는데 시골로 가자고 아무리 꼬득여도 친구들이 있는 그 동네를 떠나기 싫어하셨다. 그 집을 사기 전에 이미 3번이나 이사를 다닌 터였다.

세번째 이사한 곳은 엄마가 구한 것으로 계단을 두어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 무릎아픈 엄마에겐 조건이 좋은 반지하 방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짐을 나르고 다 돌아가고 보니 바닥에서 물이 배어 나오는 것이었다. 장판을 걷어 놓고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문지방은 잘 마른 황태포마냥  나무가 쭉쭉 찢어졌다. 

더 이상 셋방살이가 아닌 집을 사야겠다고 맘 먹으며 집을 보려 다녔다. 처음 그 집을 봤을 때는 맘에 들지 않아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다른 부동산에서 보여준 집이 또 그 집이어서 이왕 온 거 안에 들어가 구경이나 하자고 했는데 밖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난 나쁜 것은 영원히 나쁜 것도 아니고 좋다고 계속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집이 이제 나와 인연이 다 한 모양이다. 집뿐만 아니고 온 가족이 시골에서 올라와 살고자 부벼대던 성남이라는 인연도 멀어져 간다.   

그리고 나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