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알밤을 주워다 군밤으로

햇살가득한 2019. 9. 23. 00:28

태풍 차바가 제주도에 근접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연신 내리는 빗줄기에 티비 채널을 돌린다.

그것도 지루해질 즈음 나의 군밤타령이 시작됐다.

남편은 밖에 우산을 쓰고 나가 이제 길쪽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알밤을 주워와 보일러 앞에 앉아 있다.

이 남자 촌 사람 맞아?

불앞에서 연신 더워하며 한참을 알불위에서 밤을 굽고 있다니. 

재에 묻어 놓고 제 할일 하다 보면 다 익을텐데 석쇠에 이리 저리 굴리며 밤을 굽고 있다.

밤 굽기 힘들다고 약간 짜증 섞인 소릴 내길래

잽싸게 촌에 사는 즐거움 어쩌구 저쩌구 하며 고마워했더니 쏙 들어간다.



밤을 참 잘 굽긴 했다. 겉껍질과 속껍질이 딱 붙어서 노란 알맹이만을 쏙쏙 내 준다. 

소파에 길게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한 알. 그 다음에 깐 건 내 입으로 한 알.

자장면을 주문하면 오지 않는 오지이지만

군밤이 먹고 싶으면 우산 쓰고 나가 주워다가 아궁이 불에 구워 먹는 이 맛 때문에,

진드기가 촌생활을 주춤하게 하고,

고요하다 못해 뇌가 하얗게 변해가는 듯한 시골의 적막함을 군밤이 상쇄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