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가득한 날
금요일 저녁에 방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있는데 뭐 타는 냄새가 납니다.
'뭐 올려 놓은 것도 없는데...'
그러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냄새는 계속 납니다.
'진짜 뭐 올려 놓은 게 없는데.'
이런 생각이 나이 듦을 알려 줍니다. 냄새가 나면 나가 봤어야 하는게 당연한 것인즉.
한참을 지나서 나와봤더니 저녁 먹으려고 데우고-잠깐의 시간이 필요한-있던 냄비에서 연기가 나네요.
시커멓게 탄 냄비 바닥. 그리고 쪼그라붙은 도루묵 졸임.
남편이 혀를 끌끌 찹니다.
나는 나훈아의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노래를 부르며
"그러지 마. 이게 아마도 치매의 전조 증상인가봐. 다 같이 늙어 가는데 이해 하면서 살자구."
했더니 남편 어이없어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인 어제 아침부터 대대적인 그릇 닦기에 들어갔어요.
커다란 솥에 물을 한 가득 붓고는 가스불을 당깁니다.
과탄산소다를 넣고 스텐레스 그릇 들 다 모여!
하나 씩 넣어서 집게로 건져내 수세미로 닦기.
이랬던 그릇입니다.
고기 궈 먹고 닦아 내도 기름이 쩔어 붙은 석쇠도 이 참에 요리 조리 돌려가며 침수.
물 온도가 올라가기를 기다려 장농도 확 열어 젖힙니다.
얼마만에 보는 화창한 날씨. 내 너를 만끽하리라.
장농의 곰팡이 퀘퀘한 옷을 다 꺼내 바람 쐬어 줬습니다.
(아고, 버릴 것도 절반이나 되네.)
요렇게 뽀드득뽀드득 말간 얼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녀석. 거름망.
24년 째 쓰고 있는데 아직도 짱짱하니 멀쩡합니다.
온갖 것 보드랍게 체에 내릴 때 아주 잘 쓰고 있는 키친아트의 거름망.
그릇 회사에 편지라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렇게 튼튼하고 좋은 그릇 만들어 달라고.
말갛게 닦은 녀석들 모아 아침밥 짓습니다.
살면서 주부로서 행복함을 몇 번이나 느꼈었더라?
텃밭에 나가 울타리콩 몇 고투리 따다가 밥에 넣고
계란 섞어 부친 뒤 토마토 껍질벗겨 올리브유에 볶기. 후추 직직 갈아 넣고 파슬리도 좀 뿌리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산골 우리 부부표 아로니아와 콩밥, 깻잎무침, 오이무침, 토마토 계란 볶음, 풋고추 그리고 옥수수.
며칠전 남편이 혼잣말로 '닭장을 어디 지으면 좋을까?' 하던데 산골표 닭알도 상에 올릴날이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