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귀농하지 말지어다
언덕위에 하얀 집을 짓고
대나무 광주리에 상추, 풋고추 등을 따서 된장에 찍어 먹고......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의 꿈일진대
겉으로 보기엔 멋드러져 보여도 허리 아픈 고통 뒤에 오는 달콤함이란 걸
또다시 절실히 깨닫는다.
무당벌레가 잎을 다 갉아 먹어 더 이상 광합성을 못하는 감자는
장마비에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아
어제 비가 잠깐 그친 사이 나가서 캐 왔다.
이른 봄 삽으로 흙을 뒤집어 포슬포슬 하게 해 놓고 거름을 한 삽씩 떠 넣어
두 고랑 감자를 심었는데
겨우 한 바구니.
작은 것은 삶아 기름에 굴려 먹고
중간치는 삶아 간식용으로
좀 큰 것은 껍데기 까기 쉬우니까 감자전이나 밥에 넣어 먹어야겠다.
오늘도 장마비가 멈칫하여
삽이랑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나섰다.
어제 감자를 캔 빈 고랑에 뭘 심을까 하다가
콩은 털기가 불편하여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장호원 장날은 아직 며칠 남아 있고
그때도 오늘처럼 흐린다는 보장이 없기에
또 무엇보다도 고구마싹을 안 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미 덩굴을 뻗기 시작하는
이른 봄에 심은 고구마 줄기를 하나씩 잘라서
두 고랑 다 심었다.
고구마만 심고 들어 오려니
비를 먹고 기세좋게 자란 풀들이 발목을 잡는다.
조금만 뽑고 들어 가야지.
내가 뭐 전업 농사꾼도 아니고
말 그대로 취미로 하는 일인데.
그러나 이런 취미도 있을까?
허리는 이미 끊어질 듯 하고
땀방울은 안경으로 떨어져 앞을 흐려 놓고
땀에 들러 붙은 바지는 엉덩이에 걸쳐서 흐르는데
손에 흙이 잔뜩 묻었으니 어찌 추스를 수도 없다.
모 카피에 무당벌레를 보고 우리편이라고 하는 게 있다.
그 카피 쓴 사람 내 텃밭에서 무당벌레 잡기나 잔뜩 시킬까보다.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 감자 잎을 무당벌레들이 초토화시켜서
아직 더 있다 캐도 될 감자를 캤는데
섬머킹이라는 토마토에도 잔뜩 무당벌레가 열매마냥 달라붙어
이파리를 갉아 먹고 있다.
토마토는 그 진한 냄새 때문에 벌레들이 안 꼬일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무당벌레에게 내 토마토를 내주지 않으리.
무당벌레를 잡아서 발로 비빈다.
더러는 산채로 매장을 시키기도 하고.
호박 이파리로 피해간 놈들도 붙잡아
생을 종결시켰다.
오로지 대추알처럼 길쭉하니 자라는 토마토를 위해서.
전원생활에 관한 핑크빛 상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루쯤 불러 풀뽑기를 체험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콧구멍만하게 작은 텃밭도 이리도 땀 범벅이어야 하거늘.
머릿속의 내 텃밭의 평수는 점점 줄어 든다.
전에는 집 짓고 삼백평 정도 텃밭을 가꿀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고작 오십평 정도.
물론 삼백평도 로타리를 따로 쳐 주고 비닐을 씌워 덮는다면
해 볼만 할 거 같다.
나는 벌레에 관한한 심하게 자연반사적인 반응을 한다.
고구마밭에 생기는 장지 손가락만한 벌레를 발견하는 즉시
숨이 멎을 것 같고 그 언저리엔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언젠가는 호미를 내던지고 나도 모르게 내달려 가고 있는 적도 있었다.
이 벌레와 뱀과 거의 맞먹는다고나 할까.
하여튼 좀 큰 벌레만 보면 그 때는 모든 걸 접어 뒀다가
며칠 지나면 슬슬 다가가 벌레가 있는지 살펴 보면서 밭엘 들어가는데
이 지렁이라는 놈은 참 예외다.
몇해전에 호미로 땅을 일궈 뭘 심으려고 파는데
거의 뱀만한 지렁이가 나와서
호미를 내던지며 뒤로 나자빠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지렁이를 보면
"그래 내 땅을 기름지게 해 주는 고마운 지렁이."
이렇게 변한 거다.
급기야는 지렁이에 관한 책을 사 볼 정도로
이제 지렁이는 징그러운 생물이 아닌
친근한 존재로 느껴지니 나도 점점 농사꾼이 되어 가나 보다.
한 두시간 밭일에 허리를 눕혀야 되고
벌레 때문에 호미를 팽개져 두고 와야 하는 나는
전원생활이 그리 가까운 일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