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가족2
햇살가득한
2005. 9. 13. 22:56
가족 1-찰떡 아이스 | |
번호 : 15283
글쓴이 : 김삿갓 |
조회 : 85 스크랩 : 0 날짜 : 2005.02.10 16:14 |
남들은 이런 환자를 "나이롱"환자라고 한다지? 겉보기는 어디 붕대를 감기는 커녕 뻘건 소독약 흔적도 없는 내게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가 아프냐고? 그치만 어찌 알리요. 내 머릿속을 보여 줄 수도 없고. 하여튼 친구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파시통통"사 와 했더니 친구는 이것 저것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그런데 팥이 들어 있는 파시통통(맞는지 모르겠네. 가게 냉동실에서 팥 알이 그려진 걸 무의식적으로 짚는데.)은 없고 쵸코렛이 발라져 있는 거랑 찰떡 아이스를 사 왔다. !찰떡 아이스! 가뜩이나 지난 중국 계림엘 다녀오자마자 일이 터져서 후기를 못 적어 놨는데 찰떡 아이스를 빌어 조카년에 관한 서운함을 잔뜩 풀어 봐야지. 직장생활 이제 1년을 넘긴 여 조카가 어디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갑작스럽게 얘기가 나온터라 언어가 조금 되는 중국으로 정했다. 중국에는 어학연수 아니면 안 가려고 했었는데... 짐은 꼭 필요한 것만 간소하게 갖고 가는 거야. 한번쯤은 이런 말은 한 것도 같다. 그런데 현관에 서서 가자고 몇 번을 재촉하고 나서야 우리 조카 짐을 들고 나오는데... 우선 머리부터 아래로 훑어 가 보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드라이 해서 풀어 놓은 것 까진 좋았는데 떨어지면 발등이 찍힐 것 같은 굴렁쇠 귀고리를 매달고 내리는 눈도 받아 쌓을 듯이 눈썹을 먹칠하여 잔뜩 올려 붙이고. 보소, 보소. 웬 정장 코트래? 청바지에. 그래 여기까지는 그래도 봐 주겠다. 넝마 같은 카키색 커다란 배낭은 한 쪽 어깨에 메고는 마루로 걸어 나온다. 정장 코트에 양쪽으로 메면 스타일 구겨질까봐서리 그리 안했다. "다 했어." 하면서 신발을 신는데, 뾰족구두! 여기서 난 언성이 높아질까봐 심호흡을 하고는 "너 그러고 갈래?" 했더니 그냥 따라 나선다. 그래, 내가 말해 봤자 잔소리로만 들릴테고 니가 몸으로 직접 체험해 봐라. 조카의 눈썹 올려 붙이는 시간, 바르고 또 발라 줄어든 시간에 조카는 여유작작이다. 환전도 해야 하고, 하여튼 시간은 촉박한데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가 왔는데 조카가 안 보인다. 한 대를 보내니 약속시간 20분을 늦을게 뻔하다. 조카는 이런 속타는 심정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껌 사러 갔었다고 한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을 쇼핑하는데 조카 역시 짐에 치여 하길래 니가 이제 슬슬 깨닫기 시작하는군 하는 마음만 가졌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조카한테 단단히 확인 받는 게 있다. 여행은 힘들테니까 절대로 짜증내지 않기로. 내가 이렇게 다짐까지 받아 둔 데는 조카년이 이제 지도 컸다고 이 고모에게 짜증섞인 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조카가 어렸을 때가 떠오르며 더욱 서운한 감정으로 빠져 들곤 한다. 지지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오빠가 결혼을 하고 대가족 식구가 되었다. 조카 둘에 엄마랑 우리 오누이 셋. 조카는 말을 채 배우기도 전에 내게 옛날 이야기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고 난 책 내용에도 없는 걸 꾸며가며 흥을 돋구며 이야길 해줬다. 그 때쯤 고등학생이던 난 친구 모임에도 조카를 데리고 다녔다. 시장엘 가도 한 손엔 여조카, 한 손엔 남자 조카가 자기 손에 꽉 차는 내 검지 손가락을 잡고 같이 다녀서 아줌마 소릴 종종 듣기도 했다. 목욕탕에도 꼭 내가 데리고 다녔다. 가서는 조카 등을 밀여 주며 "국수발로 뽑아줄까? 수제비로 만들어 줄까?" 하면서 민 때를 뭉쳐 주면 조카는 "고모는..." 하면서 물을 끼얹었었다. 그런데 계림 호텔에서 바쁜 아침에 같이 들어가 씻으면 좋으련만 뭐 그리 감출 게 있는지 따로 씻느라 시간이 배로 더 걸렸다. 조카가 예닐곱살 때쯤 오빠는 전업을 해 보겠다고 신갈로 이사를 가서 작은 슈퍼마켓을 하였다. 널린게 과자다 보니 올케는 조카들에게 하루에 5백원씩을 주면서 그 돈으로 가게의 과자를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그 즈음 직장생활을 시작해 잘해야 한 달에 두어번 오빠네를 들렀다. 그런데 조카는 내가 갈 때마다 찰떡 아이스를 주는 거였다. 올케는 내가 찰떡 아이스를 좋아하니까 조카가 하루에 받은 용돈 500원을 쓰지 않고 모아 뒀다가 500원 하는 그것을 내게 사 주는 거라 했다. 어릴 때 조카는 그런 조카였다. 좀 커서는 한 방에서 같이 자면서 즈네 엄마(올케)보다 속 얘기를 잘 나눴는데... 계림에 가서는 조카가 붙박이 처럼 앉아 있길래 "사람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그래라. 여행이라는 게 경치랑 풍물 보러 떠나는 거지만 결국엔 사람만나러 가는 거란다." 하고 얘길 했더니 아,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열을 화악 받으며 한쪽 귀퉁이로 끌고 가며 이야길 했다. 나도 잔소리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두 번째 얘기한 거라고. 어른말 듣는 척 좀 하라고. 조카는 잠잠하다. 이젠 조카년이 다 컸다고 이 고모를 우습게 보는구나. 마음이 아팠다. 그 얘길한 뒤로 조카년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밤에 뒷골목을 둘이 나섰는데 내 팔장을 낀다. 중국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올케 언니가 "고모 꼭 붙어다녀." 했는데 중국어 한 마디도 못하는 지가 안 그럼 어쩔 것이여. 니가 여행도 처음이고 세상 물을 덜 먹었다는 거야.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 조카년은 요즘 신세대의 반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꾸 되돌아 보게 되는 이 고모의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