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깨벌레에 대한고민
햇살가득한
2005. 9. 13. 23:14
깨벌레에 대한 고민 | |
번호 : 3274
글쓴이 : 김삿갓 |
조회 : 74 스크랩 : 0 날짜 : 2004.08.07 12:47 |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도 숨이 멎을 정도로 싫어 하는 깨벌레를 오늘 맞닥뜨리고 만 거였다. 외출해서 돌아오니 저녁 일곱시쯤이 되었다. 해도 어느정도 들어가고 이왕 땀 난 거 왕창 흘리고 씻자고 생각하며 장갑을 끼고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지난 봄에 심어서 쌈 싸먹는 재미를 쏠쏠히 본 상추를 심어야겠다며 남은 씨앗도 한 봉지 들고 말이다. 일단은 감자를 심었던 자리에 난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모기가 달려들기도 했지만 볼이 미어져라 싸 먹을 쌈을 생각하며 땀을 옷깃으로 훔쳤다. 잡초라는 놈은 천방지축이어서 날 곳 안 날 곳 가리지 않고 자기가 살 터를 잡는 터라 고구마 고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사꾼 흉내 낸다고 쿠션을 싸 온 큰 비닐을 시범삼아 고구마 고랑에 덮었더니 갈가리 찢어진 휴지마냥 허옇게 너풀거린다. 애시당초 고구마 고랑 맬 생각은 아니었느나 잡초가 빨아 먹는 양분을 고구마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잡초를 뽑는데 헉!!! 용수철 튕겨나가듯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고구마 줄기에 깨망아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손끝에 남아 있는 감촉으로 보아 내가 녀석을 만 진 게 틀림없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약지 손가락 끝쯤에 그 물컹함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나은 것이다. 좀 떨어진 고랑에서 씨가 맺히기 시작한 상추대를 뽑아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몇 포기 고구마를 심어 놓고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나는 이미 도로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정도였다. 키 큰 들깨밭에 있어 안 보였던 아주머니가 뭔 일인가 하고 길가로 나와 봤다. 풀을 뽑는 내 손은 멈칫멈칫 굼뜰 수 밖에 없다. 혹시라도 또 다른 녀석이 풀잎을 갉아 먹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풀을 뽑으면서도 흘깃흘깃 눈길이 자꾸 그 쪽으로 간다. 발빠른 곤충이라서 내게 달겨 들 것도 아닌데 저 놈을 어떻게 처치해서 텃밭을 자주 올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다. 애들을 불러와? 애들은 모든 곤충에 관심이 많으니까. 아마도 호랑나비 애벌레라고 하면 나비가 태어나는 과정을 보겠다고 키운다고 할 녀석이 있을 지 몰라. 키우던 말던 나랑은 상관 없고, 어쨌든 난 밭에서 녀석을 없애는 게 최 우선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애들은 너무 멀리 있다. 이것도 안 되겠다. 아! 우리 아랫집에 지멋대로 밭을 돌아다니면서 사는 닭이 있다. 그 녀석을 좀 빌려 올까? 녀석에겐 영양가 있는 맛난 간식이 될 수 있을텐데. 깨망아지는 내가 뒤집어 놓은 고구마 줄기 때문에 자기 위치가 노출되었다고 느꼈는지 눈에 보이지 않게 천천히 줄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상추 씨도 뿌리지 못하고 호미를 들고 서성거리다가 텃밭에서 나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니까 차라리 상추 씨라도 뿌리고 나올 걸 그랬나 보다. 녀석이 자리를 옮겨 다른 고구마 고랑으로 옮겨 가면 어쩌나. 아이구, 어쨌든 텃밭을 자주 들락거리기는 다 틀렸다. 누군가 이 깨망아지를 없애주지 않는 한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