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독서+영화

책 사치

햇살가득한 2010. 8. 3. 00:15

읽고 난 책은 책일까? 아님 종잇장일까?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꽂아 두지 못한 책이 6박스나 된다. 이사를 그렇게 다니면서 다닐 때마다 버리는데도 이사를 갈 때 보면 또 불어 있다. 

 

대학 다닐 때 무지하게 현학적인 까마귀가 생각나게 온통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형이 있었다. 

그는 내가 접해 보지 못했던 문학에 관한 책들을 책꽂이에 쫙 꽂아 놓고 있었는데 

그 형이 그 책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그런 책의 제목을 알고 어쨌든 꽂아 놓았다는 자체가 우러름이었다. 

문학에 관한한 한 카리스마 했던 그형을 따라 우리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시내에 가서 책을 몇 권씩 사들였고 나 또한 그들을 쫒아 책을 안고 들어 오는 날은 뿌듯했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에 넣기 보다는 일종의 과시용이었던 것 같다. 

며칠전 그 형네 갔었다.

내가 생각하는 단촐한 집과는 반대로 그의 집은 영화관이요, 서점이었다. 몇 인치인지도 모르는 벽걸이 TV에 한쪽 면을 꽉 채운 DVD로 거실은 어두컴컴하니 답답했다. 

방 한 칸에는 20여년 전 대학 때 보았던, 아니 내가 그를 보기 전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을 책부터 사방이 책인데 책꽂이를 넘어서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하여튼 그는 여전히 책속에 묻혀 살았고 

나는 책을 버리려 안간힘을 쓰며 산다. 

 

아는 사람이 자기가 지은 농산물과 책을 물물교환하자고 했다. 

농산물 값은 치렀으니 물물교환은 아닐테고 책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욕심부려 들여 놓은 책들을 펼쳐본다. 

제목은 눈에 익은 것들이지만 내용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인터넷으로 사서 책 안내와는 달라서 읽다가 만 책, 어떤 것은 읽지 않은 책, 더 심한 것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는 책. 그러나 막상 보내 주려니 머뭇거려진다. 책을 샀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언젠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공부하고 싶을 때가 때라고 생각합니다."

늦은 대학원 면접 시험 때 한 말이 기억난다. 그 교수는 그런 나를 눈여겨 봤겠지만

이젠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절감한다.

이제는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책 얘기를 해주다가도 내가 틀리기도 한다. 아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이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가 틀린 부분을 아이들이 지적을 해서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는 적이 부지기 수다.

지금도 이런데, 더 나이들면 책 얘기를 어떻게 해 줘야 되는지 참 난감하다.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할 책이 종이에 활자로 박힌 채 그냥 책꽂이에 꽂혀 있다.

언젠가 읽겠지, 필요할 때가 있겠지 하면서 미련을 못 버리고 처분못하니 공간만 차지한다.

하여

앞으로 책을 읽으면 줄거리나 감상을 적어 놓기로 했다.

작년에 독서 논술 연수를 갔었는데 모 교사의 독서록을 보고는 감동했었다. 

또박또박 쓴 글씨하며 책의 내용과 감상을 적어 놓은 글. 

그에겐 독서록이 일기장과 같은 인생의 내력을 적은 하나의 보물이 되었다.  

손 글씨 쓰기 싫어하는 나는

블로그에 읽은 책이라도 이젠 적어 보자.

 

책은 머릿속에 있을 것이지 책꽂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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