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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는 너무 힘들어

햇살가득한 2010. 12. 29. 13:16

6살 손주 조카 녀석.

제 동생이 태어나자 쓰러지는 척 뭉개고 가기 등 심술을 부리는 줄만 알았는데

이젠 어쩌다가, 아주 어쩌다가 지 부모랑 떨어져서 잘 줄도 안다.

그제 밤.

녀석은 썰매를 타러 가자는 나의 꾀임에 빠져 자기 엄마를 보내고 우리 집에 혼자 남았다.

프라스틱 아기 욕조를 가스렌지에 달군 못으로 구멍을 뚫고는 운동화끈을 연결하여 썰매를 완성했다.

눈을 뜨자마자 아침을 먹고는 욕조 썰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썰매 타러 가는구나? 너는 좋겠다. 엄마가 멋있는 썰매도 만들어 주고."

수줍음이 많은 조카아이 그냥 멀뚱멀뚱한다.

"이모할머니예요."

내 말에 아줌마는

"아이구. 미안해요. 엄마는 일이 많아서 잘 놓아 주지도 못하지."

중요한 건 이 한마디다. 엄마는 일이 많아서 잘 놓아 주지도 못한다는.

정말 옆에서 본 조카는 애들 둘에 제 정신으로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조카 내외를 단 이틀이라도 휴가를 주겠다고 했는데 사실 한 녀석도 벅차다.

 

녀석은 욕조에 앉고 나는 끌고.

"이랴,이랴. 나는 산타 할아버지고 이모할머니는 루돌프야. 이랴, 이랴."

녀석은 아주 신이 났다.

 

 

 

미끄러움에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이 아이를 보면서

"넌 신나겠다."

를 연발한다.

보는 사람마다 욕조통과 아이를 보면서 웃는다.

횡단보도를 지날 때는 조카 아이는 내려서 걷고 눈길은 다시 썰매를 타고 

동네에서 좀 먼 공원까지 갔다.

편안한 산타는 좀 추운가 본데 루돌프는 땀이 난다.

공원을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아휴, 루돌프는 너무 힘들어.

 

저녁때가 되어 조카네 식구가 저녁을 먹고는 돌아가려는데

이 아기 산타는 이모할머니랑 또 잔댄다.

왜?

물었더니

"좋으니깐."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나, 이모할머니랑 결혼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