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전.
작년의 사고로 많이 의기 소침해져서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여행도 마찬가지. 어디를 가야 할 지. 누구와 갈지. 며칠동안 가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떠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월 4일(화)
김포공항이든 인천공항이든, 공항에 서면 설렌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든다.
제주도 여행에 관한 책을 3권이나 뒤져도 이렇다할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가서 결정하자고 생각하며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인터넷 까페로 닉네임만 알고 있던 멋쟁이님이 나와 계신다.
나와 옥수수님, 그리고 어제 갑자기 일행이 된 워킹걸님과 멋쟁이님 차에 오르고 나니 멋쟁이님은 우리를 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 내려 놓으신다.
12시.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한바퀴 돌기.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갑자기, 그러나 확실하게 세워졌다.
올레라 함은 큰 길에서 집까지 이어진 작은 골목길을 뜻한다. 하여 제주 어디건 다 올레길인 것이다.
구제역으로 올레길 일부가 통제 되었기도 하려니와 유명세를 타며 우루루 몰려 다는 것을 싫어하는 청개구리띠인지라
우리는 바다 가까운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발효 잘 된 찐빵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시커먼 현무암으로 밭과 밭, 집과 집의 경계를 쌓아 올렸다.
어설프게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돌과 돌 사이의 공간으로 바람이 통과한다.
아침을 안 먹었을 거라며 워킹걸님이 사 온 제주도 쑥빵은 이미 식어 버렸다.
그 찐빵을 놀이터 의자에 걸터 앉아 눈비를 맞아가며 먹는데 우리가 유쾌하지 않았다면 거지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가능한한 바다 가까운 길을 따라서 걷기. 또한 개장을 피해 걸으며 이때까지도 옥수수님이 개에 대한 공포가 그렇게 깊은 줄 몰랐다.
두어시간 걸었을까. 십여년전쯤에 삔 발목이 슬슬 들고 일어난다. 얌전히 좀 안 있을래? 열흘 넘게 걸어야 하거든.
저녁때가 되어 조천읍 연북정까지 걷고는 멋쟁이님 차를 타고 멋쟁이님 귤 농장으로 갔다.
따서 들고 갈 수 있을만큼 따 가라신다.
무농약으로 못난이가 된 귤을 올해 처음 팔고 목표치만큼 팔았으니 더 이상 안 판다고 했다.
농막에서 밥을 해 먹고는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5일(수).
아침으로 누룽지를 끓여 먹고 귤밭에 가서 귤을 따기 시작했다.
뭐든 체험을 좋아하는 나. 농부가 온갖 정성을 들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 놓으면 나는 수고로움은 뒷전이고 무임승차하듯 그 열매를 따며 신이 난다.
3박스를 따 놓고 짐을 꾸려 어제 걸었던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이어 걷기를 한다.
북촌 다려 전복집에서 점심으로 고등어조림과 성게국을 먹고는 또 걷기.
김녕해수욕장을 지나 월정리를 걷는데 등산화 신발창이 떨어져 나가 균형잡힌 걸음이 안 된다.
좀 쉬어갈 요량으로 신재생에너지 사무실에 들러 뜨거운 차도 마시고 화장실도 들렀다.
앞으로의 에너지와 물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우는 신재생에너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좀 더 절약하자는 생각을 한다. 호주에 갔더니 개인 주택마다 물 저장고가 있었다.
지붕의 빗물을 받아서 다시 쓰기 때문에 주방에 수도꼭지가 두 개이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물저장고가 없으면 허가를 내 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샤워도 4분만한다. 처음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4분용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워 놓고 보니 그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심한 가뭄때라 자동차 세차도 금지 되었었다. 중요한 건 시민들이 정부가 정한 방침을 잘 따르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얼마나 물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낭비하고 있는 그것들로인해 정말 최소한의 것만 쓰면서 생활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가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가 낭비하는 것 만큼 우리는 그들에게 가해자인 셈이다.
자기 편한 쪽에서 생각한다고 걷는 길 중간중간에 이런 사무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걷는다.
날이 좀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다.
우리의 오늘 목적지는 30분 정도만 더 걸으면 될 것 같았다.
맞은편쪽에서 하얀 차가 멈추더니
"걸어가세요?"
한다.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어둠이 깊어지고서야 그 여자의 말이
"태워줄까요?"
라는 뜻이었음을 알았다.
어둠은 눈깜짝할 사이에 그 깊이가 깊어진다.
가로등도 없고 길도 모르고 바람은 거세고..걸음은 거의 경보 수준이다.
그 와중에도 맘 넓은 옥수수 언니.
시커먼 어둠 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전경을 보고는 사탕을 주고 가자며 멈춘다.
사탕을 꺼내 주는데 어둠속에서 나타난 개 두 마리. 그것도 그냥 똥개가 아닌.
개는 보초병의 부름으로 다시 들어가고 우리는 몇발짝 떼었을까 다시 개들이 뛰어 쫒아온다.
오금이 저리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밤이 되니 개들의 짖음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6시 40분이 되어 걸음질을 멈추고 버스가 닿는 큰길에 와서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돌아왔다.
내일은 워킹걸님이 서울로 돌아가기에 제주도에서 송별회를 하였다.
숙소도 재작년에 머물렀던 곳이고 횟집도 그랬다.
제주도 토박이들이 외지인을 데리고 가는 곳은 다 같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인연이 느껴진다.
횟집의 더 올려 놀 곳이 없는 화려한 상을 한 장 찍었어야 했다.
카메라의 배터리를 충전해 오지 않은 실수에 또 하나의 기록장치인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사진이 곁들여지지 않은 후기는 글에만 집중해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한 편의 소설책과 같을까?
여자들은 불을 끄고 이불 속에 누우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을 끄지는 않았지만 이불을 둘이서 뒤집어 쓰고 얘기를 나눈다. 2시 반.
이러다가 또 늦게 걷기를 시작하면 일주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그만 자야겠다.
모아모텔: 제주시 삼도이동 755-7337 (방 2개를 1개로 만든 큰 방. 씽크대도 있음. 35,000)
소라횟집: 제주시 건입동(서부두 방파제입구) 757-9953 (4인 회, 매운탕 65,000)
6일(목).
워킹걸을 보냈다. 걷는 것 보다 같이 있어서 좋았다는 그녀는 헤어지는 게 그렇게나 아쉬운가 보다.
트래킹화 신발을 사 신고는 어제 개와 어둠의 공포로 마감했던 한동초교까지 버스로 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신산리. 목적지를 정하기는 갖고다니는 볼펜의 길이가 시작과 종료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오늘도 늦게 시작한 걸음에 또 장기 도보팀을 볼겸 해서 성산까지만 걷기로 했다.
해가 아직 남아 있는 게 아쉬울 따름이니 어느새 완주에 대한 목적의식이 확고하게 굳어진 셈이다.
장기도보팀이 숙박하고 있는 펜션에 들렀다가 나와서 일출봉 아래 모텔에서 잠을 청했다.
오후부터 일이 계속 어그러진 참 이상한 날이었다.
금호모텔: 일출봉 아래. 방은 작으나(침대없음) 뜨끈뜨끈(30,000)
청진동 뚝배기: 일출봉 아래. 해물 뚝배기가 참 맛있음. 영업시간 07:00~22:00, 전화 782-1666
7일(금)
성산 일출봉에서 시작하여 오늘의 목적지는 표선리.
옥수수님과 나는 여행 스타일이 비슷하여 유명한 관광지는 들르지 않는다는 거.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도 패스.
온평리 바닷가를 걷다가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회 한 접시를 시켜 먹는다.
꼬들꼬들한 해삼에 딱딱한 소라 회를 미역에 싸서 초고추장을 푹 찍는다.
비릿하고 짭쪼름한 바다향내가 입안 가득 어우러진다.
일본에서 살다 작년에 오셨다는 할머니는 해녀가 아니었다.
어제 일이 꼬이는 바람에 숙박을 하기로 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네를 사과할 겸 찾아 가기로 했다.
차를 되짚어 타고 갔으나 이런 이 산이 아니네.
기운도 빠지고 힘들고... 경찰차를 세웠다. 사실은 길을 물어볼 참이었다.
"저, 너무 배가고파서요. 조 앞에 보이는 저 집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경찰차도 얻어타고. 경찰차는 안에서는 안 열린다는 사실.
점심을 먹고 다시 찾아 갔더니 어, 아까 그 산이잖아.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서로의 마음을 풀고 다시 걷기 시작. 옥수수님의 모자는 떨궈 둔 채로.
삼달리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필름값을 아끼려 고구마 서리를 해 먹던 가난한 예술가.
제주도에 미쳐서 20여년을 생활하며 그곳에 뼈를 묻은 남자. 왜 지독한 예술가의 인생은 짧은 것일까?
목적지 표선리까지 와서 숙소를 정했다.
욕조가 있는 모텔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발목과 무릎이 쿡쿡 쑤신다.
우리의 짐은 입고 있는 옷과 갈아 입을 한 벌의 옷이 전부다. 거기에 누룽지 한 주먹과. 김치와 멸치의 밑반찬 약간에 코펠 하나, 56g 가스 버너 하나에 샘플로 된 스킨 로션 정도.
숙소에 들어 옷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 놓으면 수분이 증발된다.
그 빨래를 굴비 뒤집듯 뒤집어 주면 아침이 되어 빠닥빠닥 잘 마른다.
짐이 가벼우니 어디서 자든 농막에 둔 나머지 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여행이란 필요한 것에 대한 중요성을 확인하는 게 아닐까?
비치파크모텔: 표선면 표선리, 방이 따뜻, 욕조 있음(30,000), 전화 787-7955
돈돼지흑돼지가든: 표선리 (비치파크모텔 20m). 돼지고기가 맛있음.
8일(토)
내가 먼저 씻고 나면 옥수수님이 씻고 그 사이에 버너에 불을 붙여 누룽지를 끓인다.
옥수수님이 챙겨온 김치와 멸치를 꺼내놓고 구수한 누룽지를 먹으며 매 끼마다 누룽지 칭찬을 한다.
다음 여행에도 꼭 누룽지를 눌려 가리라.
아침을 먹으러 여기저기 밥집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사 먹는다면 아침은 많이 먹지도 않으니 남는 반찬이 부담스럽기도 할텐데
목을 깨우며 내려가는 구수하고 뜨거운 누룽지는 아침 밥으로 제격이었다.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 냉찜질을 해야 했을까?
아침에도 아파서 앉았다 일어났다 10번을 하고는 걷기 시작한다.
당근 수확하는 밭에 들어가 방큼 캐 낸 당근을 얻어 먹고
길가에 작은 방울처럼 달려 있던 금귤을 따 먹는다.
제주도는 4계절 농사가 다 되니 부지런한 사람들은 먹고 살만한 동네인것 같다.
콜라비, 당근, 무, 배추가 막 수확철이고 완두콩은 고투리를 달고 있다.
반나절 걸었을까?
옥수수님이 왜 발을 절며 걷느냔다.
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남원읍으로 들어와 한의원을 찾았다.
침, 부황, 뜸을 떴다. 제주도 사람들. 참 친절하다.
점심을 먹고 바다가 코앞인 민박집에 방을 얻었다. 오후 2시.
오늘 날씨가 최고로 좋은 날인데 민박집에서 뒹굴어야 한다니.
이따금 헛발을 디뎌야 하는 강한 바람에 눈은 종횡무진 달려오고, 왼쪽 볼은 빨갛게 얼어가고... 무슨 개척자마냥 걸었는데 말이다.
제주도 완주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좀 우울했다.
꽃사슴한의원: 남원읍 남원리. 전화 764-7510
경인식당: 음식맛이 좋음.(꽃사슴한의원에서 20m)
9일(일).
발목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문제는 무릎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한채 그래도 좀 걷다가 (2시간 정도) 이번 걷기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목적지인 쇠소깍까지 약 10키로를 남겨 놓은 채.
버스를 타고 가서 이중섭 미술관에 들렀다. 1951년 피난시절에 거의 1년을 살았다는 살림집은 방 1.5평, 부엌 1.9평의 작은 집이다. 피난시절에야 누구나 생활이 그러했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혼자 외로움과 병마와 싸웠을 예술가의 고달픈 삶이 맘을 아프게 한다.
멋쟁이님의 차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돌아보며 제주시내로 왔다.
농장에 들러 짐 정리를 하고 가져갈 귤을 따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10일(월)
제주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했다.
화선지에 까만 먹물로 가로 세로 선을 편하게 긋고는 공간에 노랑, 초록, 빨강 물감을 바르면 멋진 그림이 되듯
밭과 밭의 경계가 검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곳에 연두색 초록색 또는 노란색으로 혹은 주황색 등 갖가지 색으로 모자이크 된 제주도의 들판이 점점 멀어져 간다.
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서 위미동백나무군락지까지 제주도 반바퀴를 돌았다. 해안선을 따라 걷기가 230km 라고 하니 약 100km를 걸은 셈이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여행지도 좋지만 동행인과의 맘이 맞는다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 된다.
멋쟁이님을 비롯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으니 내가 베풀일도 많이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