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목욕탕에서 치약을 짜 이를 닦고 있는데 전기가 나간다.
낮에도 실물화상기를 보며 수업을 듣고 있는데 예고없이 전기가 나갔고 퇴근길에는 신호등이 안 켜진 데가 있었고 켜진 데도 빨간불이 오래 켜 있어서 고장났나보다며 그냥 진행해 버릴까 했었다.
칫솔을 물고 더듬거려 방문을 찾았으나 씽크대의 물병이 잡혔다.
한뼘 정도 문을 지나친 것이다.
방안 책상 위 노란 바구니에 손을 넣어 손끝의 촉감만을 의지한 채 손전등을 찾았다.
뒤적뒤적. 그러나 끝내 손가락만한 손전등은 잡히지 않았다.
전화 대기중이라고 늘 하인처럼 서너 개의 불빛을 깜빡거리며 대기하고 있던 전화선의 단자함도 죽어 있었다.
전기를 쓰지 않는 게 뭐가 있을까?
주방의 가스불이 생각났다. 전기 압력솥을 쓰지 않고 가스불을 쓰는 게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꼭지를 비트니 어둠 속에서 파란색 불꽃이 삼킬듯 타올랐다.
그 불빛에 의지해 거실 구석에 있던 60cm 정도 되는 긴 초를 꺼냈다.
작은 것을 선물해 주길 좋아하던 ㄱ 이 준 것인데 열어보기만 했을 뿐 불을 붙이는 게 처음이다.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노란 불이 피어났다.
손바닥 넓이만큼 큰 파란색 가스불 보다 작은 촛불이 훨씬 밝다.
거실과 방안까지 비춰줘서 오늘은 촛불 감상이나 해 보자고 생각했다.
촛불이 타며 촛물을 만들자 불이 작아졌다. 초를 기울여 몇 방울을 흘려보내니 불꽃이 다시 살아난다.
알전구의 노란 빛도 아니고 형광등의 창백한 색은 더더욱 아닌 노란 은은한 빛이 집안을 감싼다.
밤은 밤 다워야 해.
어두운 곳, 추한 곳을 좀 가려 줘야 하잖아.
停電.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점검으로 인하여 의도적으로 단전을 시키는 것 말고 자연재해로 인해 정전이 될 수도 있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 때론 아나로그도 필요하다.
추석전날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전국 지도를 한 장 구하며(도로공사에서는 "고향 가는 길" 이라는 지도를 제작하곤 했다.) "네비게이션이 없어서요." 했다.
아직까지 네비를 의지해서 길맹이 되고 싶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수시 검색을 해서 사색의 시간을 내어 주고 싶지도 않다.
가능하면 편리와 빨리를 불편과 천천히로 바꿔 쓸 만한 게 없을까?
작은 불꽃이 거실과 방안을 비추는 걸 보며 촌에서 쓰던 남포등이 생각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촌 집에서 해질녘이 되면 남포등의 그을음을 닦던 그 때가 떠오르며 비상을 겸한 장식용으로라도 하나 사 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원전 사고도 그렇고 또 다가올지 모르는 자연재해도 그렇고.
시골에 살면서 페달을 밟아 전기를 일으켜 믹서기를 돌려 쥬스를 갈아 먹는 그 아이네 집에서는 지금 정전 사실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런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무슨무슨 공단에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생산 차질이 생겼다는.
썰어 놓은 참치회가 녹아 물이 흐르는 것을.
빨리 가지 않는 것.
그래서 천천히 주변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반 디지털 시대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