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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 5. 한택식물원에 갔다

햇살가득한 2013. 5. 5. 23:46

큰언니는 넝쿨장미를 싫어한다

몽글몽글 담너머로 빨갛게 피어나는 그 예쁜 꽃을.

둘째 언니를 기도원에 데려다 줄 때 기도원에 넝쿨장미가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더랜다. 그 언니는 7월의 그 탐스런 포도를 머리맡에 두고 먹지 못하더니 기어이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오늘은 한택식물원엘 갔다. 

2년전 추석때 엄마를 모시고 세 딸이 한택식물원에 갔었다. 비가 많이 온 뒤라 꽃이 녹아서 볼 거리가 없어서 다음에 오겠노라고 환불을 받아 되돌아 왔던 곳이었다. 

큰언니는 엄마가 기운이 더 없어지기전에 좋아하는 꽃 구경을 시켜 드리자고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엄마는 2년전, 정확히 말해서 1년 6개월 전에 엄마는 늘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기운이 없지는 않았다. 식물원에서 나와 와우정사를 갔을 때도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으며 500나한을 보고 신기해 하며 구경 잘 했다는 얘길 몇 번이나 하셨다.  

오늘은 엄마 오른손엔 내 등산용 지팡이가 들려 있다. 엄마는 지팡이를 처음 짚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멀쩡한 사람도 산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양손에 지팡이를 짚는다고 위로를 해 드렸는데 엄마는 지팡이를 짚는 게 아니고 끌고 다녔다.

표를 끊고 검표원 앞에서 휠체어를 빌렸다. 엄마가 휠체어를 타다니... 큰언니가 엄마를 밀고 튤립꽃 사이를 다녔다.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끝이 봉긋하게 오므라들지 않고 뾰쪽하니 밖으로 피어난 튤립도 보면서.

사진을 몇 번 찍었다. 튤립이 무더기로 피어난 곳에 앉아 보라고 했지만 엄마는 굳이 싫다고 했다. 언니가 나중에 사진 찍는 것도 싫어 하는 걸 보니 눈치 챈 거 아니냐고 한다.

내일 대학병원엘 가보기로 했다. 뇌 검사를 해봐서 암이라고 진단이 내린다면 더이상 검사하지 말고 집에서 요양을 하라고 해야겠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될때까지 엄마는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가 예전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하긴 했었다. 그러나 작년말까지 일도 다녔고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머리를 찍어봤을 때도 이상이 없었다. 아니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배가 아프다고도 했었다. 묽은 변을 몇 번씩 보긴 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운이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혹시 대장쪽에 이상이 있었을까?

같이 살면서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고 또 그러다말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병을 키운거다.

엄마 연세 83세. 솔직히 사실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마음아픈 것은

내가 늘 일 좀 그만 다니라고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작년까지 일을 했다. 새벽 2시가 되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일어나보면 이미 일을 나가고 없는... 그리고 저녁이 되면 돌아와 쓰러져 주무시는 생활.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암이 걸렸다는 것도 아니고, 일생을 일만하다가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얼마나 자식들 가슴에 못을 박을거냐고 일을 그만 다니라해도 사위, 손주들 얼마씩 줘야한다고, 올해도 큰언니 2백만원을 줘야 한다고 일을 할거라고 했었다. 

날씨가 계속 춥다가 일주일 사이에 연두색 물이 확 올랐다. 들판은 온갖 연두빛인데 뭘 심어야 한다는 엄마는 또 씨앗을 챙긴다. 심어놔도 수확이나 할까 걱정되는 마당에... 

하품리 밭에는 땅콩을 심을까한다. 엄마가 그거라도 들여다보면서 위안을 삼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