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게 떨어진 지령입니다.
어제 아로니아를 보러 갔다가 노린재들이 즐거이 노닐고 있어서 냄새 풍기는 놈이라 싫다고만 생각하고 왔는데
네이버 행님에게 여쭤봤더니 진액을 다 빨아 먹는다네요.
헛, 이놈들.
올 봄 6년생 5주를 심어 놓고 야심작이라며 텃밭의 우선순위를 메겨서 풀 뽑아 주고
가뭄에 물 퍼다 주고 했는데 다 된 죽에 코를 빠뜨릴 수는 없는 일.
목초액을 주라는 분도 있었고 제충국을 뿌리라는 분도 있었는데
가장 솔깃한 건 노린재들이 아침 7시에는 활동성이 별로 없어서 날지 않는다는 행님의 말을 듣고
녀석들을 일망타진할 통을 제작했습니다.
바로 이것.
페트병 바닥이랑 입구가 가까워서 다시 기어 올라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됐는데 한 마리도 못 나오더군요. 후후
목발 하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두손으로 노린재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가 집을 나설 때는 비가 안 오더니 부슬부슬 내리는 것이 좀 더 오면 청승이 되려고 합니다.
친환경은 정말 힘들구나. 거기다가 일일이 잡아 줘야 하는 텃밭농도.
녀석들 굶겨 죽일 겁니다.
아로니아 두 알이 굴러 들어갔지만 어쩌면 그 두 알 서로 먹겠다고 서른 마리가 각축전 벌이는 거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저기 벌레가 베어 물은 자국이 있긴 하지만 베짱이들 소행인 것 같았습니다.
녀석들이 가을에 베를 짜기 위해 배를 불리고 있었는데 두 세 마리라 그냥 눈감아 주었습니다.
올 봄, 눈에 좋다는 말에 자꾸 침침해지는 내 눈을 얼른 떠올렸고
항암 효과가 좋다는 말에 수확하여 엄마가 드실 수나 있을까 하면서 심었던 아로니아.
일주일 후면 수확을 할 듯 합니다.
비도 점점 더 촘촘히 내리는 것이 더 있다간 청승일 듯 하여 밭둑으로 나오는데
위에 사는 선생님이 매실액을 내밉니다.
봄에 비트를 몇 조각 넣어 분홍색 물김치를 담아다 드린 적이 있고 그 후에 처음 뵙는데
이렇게 매실액으로 보답을 해 주시네요.
빗물이 연잎 위로 떨어집니다.
이파리가 넓어서 빗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데
남편 고향을 따라 명퇴를 하고 노후에 들어와 사시는 선생님은 비 온다고 들어가시라고 해도 자꾸 말씀을 잇는 걸 보니
그동안 수다 상대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우리는 우산도 받치지 않고 빗속에서 목백일홍 얘기며
전봇대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며
자귀나무가 씨앗을 퍼뜨려 큰 나무가 되어 간다는 둥
수도관은 여기서 따면 된다며 밭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기도 하고,
선생님은 집을 지으면 이웃도 생기며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 딴 참외를 차 까지 들어 주려느냐고 물었지만
"이젠 요령이 생겨서 잘 해요."
하면서 목발을 짚으며 돌아섰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게 좋다."
하시며 진분홍 바람막이 옷을 입고 손을 흔듭니다.
찬거리로 길 옆 질경이를 한웅큼 뜯었습니다.
데친 뒤 꼭 짜서 양념하여 들기름 넣고 달달 볶으면 한 끼의 반찬이 되지요.
냉장고가 클 필요 있나요? 이렇게 알아서 키워주는 자연 냉장고가 있는데...
빗소리는 간간히 들리고
감자를 갈아 들기름 두르고 전을 부쳤답니다. 비오는 날엔 감자전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