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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야, 미안해

햇살가득한 2015. 7. 31. 21:48

이 때문에 서울에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엄마와 언니와 함께 왔다. 

밭에 가 본 엄마는 노는 것 보다 당장 밭을 매자며 낫을 사오라고 했다.

밭을 매는데 낫을? ㅎㅎ

어쩔 수 없다.

내 다리만 멀쩡했어도 야무지게 김을 매 줬을텐데... 라는 건 희망사항일테고.

옥수수가 여물어 가는데 풀을 헤치고 따러 갈 수가 없어서 가을에 여물면 뻥튀기나 해 먹어야겠다고 반 포기 상태였는데 언니가 오니 풀 제거로 급반전했다.

명아주가 판을 치던 밭고랑은 길이 뚫리고

 

 

 

그늘 속에서 존재를 드러낸 호박도 보이고, 

아차, 덩굴을 잘라서 호박 하나가 뎅강 목이 떨어지고, 거의 다 자란 수박도 그랬다.

  

 

 

속을 파내고 그릇을 만들려고 심은 박 두 그루가 기세좋게 뻗어가며 열매를 달고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조카 아이들 말캉말캉한 살 같기도 하고 

 

 

before and after 사진을 찍는다면 바로 이것. 널려진 풀 시체들 사이에 살아남은 호박들은 갑작스런 햇빛에 현기증을 하며 살이 누렇게 익어간다.

 

 

 

 

 

오랜 가뭄에 심은 팥은 나오지 않아서 빈터가 된 곳에 잡풀이 기세좋게 올라오고,

녀석들 목을 쳐랏. 언니가 휘두르는 낫자루에 목이 뎅강뎅강 잘려 나간다.

 

풀속에서 겨우겨우 구걸하듯 햇빛을 받고 자란 옥수수.

성장제(비료)를 줘야 했었으나 생략하니 짜리몽땅한 옥수수들.

거기다가 알도 드문드문 박힌 것도 있고,

벌레들은 좋아라 하며 파먹고 있고.

옥수수야, 미안해.

 

 

네게는 참 염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맛나다.

오늘 점심도 옥수수로 한 끼를 채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