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통에 담긴 고추장이 문득 생각나서 열어 봤더니 역시나 곰팡이가 좀 피어있었다. 두 개 다 그랬다. 숟갈로 걷어내고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조만간 항아리에 옮겨 담으리라 생각했다.
금이 간 항아리가 있다. 항아리가 좋아서 어디서 얻어 뒀는지도 모를 항아리가 20여개는 되는데 정작 멀쩡한 건 두어개나 되려는지. 언니는 요즘 사람 같지 않게 항아리를 모은다고 별난 사람이라 한다.
어쨌든 난 금이 간 항아리를 잘 씻어 햇빛에 말려 두고는 1키로 정도 떨어진 텃밭으로 가서 피마자를 몇 개 따 왔다. 피마자를 살짝 볶은 뒤 안과 밖으로 금간 곳을 따라 문질러 줬다. 막이 생겨서 새지 않는단다.
조카가 첫 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을 때는 공교롭게도 여름방학때였다. 조카네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짐도 풀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으러 간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졸지에 난 조카 산바라지를 해 주러 조카네 집으로 다시 갔다. 공교롭게도 셋째도 겨울방학때 태어났다. 역시나 두 녀석 뒷바라지를 일주일 해 주다가 몸살이 왔다.
조카의 엄마인 큰언니는 딸 산바라지 때문에 일을 그만 둬야 할 판인데 다행히 시간이 나는 내가 해 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큰 언니는 나를 봐 주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했는데 내리 사랑으로 조카한테 갚으면 될 것 같았다.
조카의 시어머니는 두 녀석이나 태어날 때 도와줬다고 늘 내게 고마워서 해마다 고추장을 담가서 보내 주신다. 조카네 시어머니가 해 주시는 고추장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맛있다. 고추장 장사 하셔서 되겠다고 했더니 신나서 또 보내 주신다. 작년에는 용돈과 강릉바다에서 직접 잡은 도루묵을 한 박스 보내 드렸더니 그 돈으로 고추가루를 사서 또 장을 담가 주셨다.
"고추장 맛이 그 때 그 때 달라."
이번에도 세 통에 담긴 걸 한 통으로 합쳐 옮겨 담는데 언니가 한 말이다. 맛있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장사를 한다면 좀 곤란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추장 담는 게 그 때 그 때 맛이 다른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고추 맛이 다를 것이고 , 왜냐하면 가뭄, 비의 양, 일조량 등에 따라 고추 맛이 다를테니까. 또 담그는 사람의 건강이나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 질 수도 있겠다. 한통은 묽고 또 한통은 좀 짙은 검붉은색이 나고 매운맛은 별로 없는데 한 통은 달달한 것이 맛있다. 강릉에 있는 것은 너무 매워서 먹기가 힘든데 언제 그걸 갖다가 섞어야겠다. 네 통이 서로 어우러지는 셈이다.
그 고추장을 금 간 항아리를 때워 옮겨 담고는 옥상 햇빛에 두었다. 모시로 입구를 막아 고무줄로 봉한 뒤 유리를 덮었다. 고추장 먹을 때마다 조카의 시어머니가 생각나는데 음식으로 서로 서로의 고마움을 전하는 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