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가 크다보니 늘 배낭을 들고 출 퇴근을 하는데 산 지 3주가 되었는데 아직 몇 컷 찍지도 못했다.
매뉴얼 조차 볼 시간이 없다. 여행을 가던, 사진을 찍으러 가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가야 한다. 이전까지는 여행에 사진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내년에 강릉에 가서 살게 되면 사진도 나름 신경써서 찍고, 웃는 아이들도 잘 찍어보고, 어른들의 주름진 골에서도 세월도 찍어 내리라.
내 사진기의 이력은 고등학교 졸업즈음 형부가 외국에서 사다 준 rolly카메라가 시초였다. 작기는 했는데 크기에 반해 나름 무거웠었다. 물론 필름 카메라였다. 고장이 나서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정들인 물건 함부로 못 버리는 내 성격에 어떻게 그렇게 버렸는지 의문이다.
다음에 산 게 2003년 중고 캐논 파워샷 G5. 이건 접사 기능도 좋았고 나름 만족했다. 직장 동료가 바닷가에서 밀지만 않았어도...... 바닷물에 빠뜨리고 여행을 망쳤다.
그래서 그 동료가 사 준 캐논 파워샷 G5. 더 업그레이드 됐을텐데 G5만도 못했다. 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안 생겼다. 그저 마지못해 찍는 수준. 거기다가 먼지가 안쪽으로 자주 들어가 몇 번 수리를 맡겼고 초점이 분산되는 걸 A/S 맡겼어도 그 때 뿐. 급기야는 샀던 가격의 절반정도의 수리비를 내야 한다길래 그냥 가져왔다. 그래도 고쳐서 가벼운 여행 다닐 때는 갖고 다닐 생각이다.
그리고 좀전에 산 후지필름 X-T1. 이건 강릉 사진작가가 권해준 거였다. 자기 것도 이걸 쓰는데 후속모델인 X-T2가 새로 나왔지만 T3로 건너 뛸 생각을 하고 100만원 더 싼 구 모델을 샀다. 이것만으로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몸도 무뎌지고 생각도 무뎌지고, 감정도 무뎌진다. 바닥에 핀 작은 꽃을 찍기 위해 납작 엎드려 조리개를 조이는 그런 열정의 날들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