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갔더니 남편 방에 큰 돼지가 한 마리 있었다.
분홍색인데 햇빛에 바랜 걸로 보아 꽤 오래 됨직해 보였는데 들어보니 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다.
시누이는 도배와 장판을 한다며 냉장고도 비우고, 서랍도 정리하고... 하여튼 짐이 될만한 것들을 버리고 치우며 집안 정돈을 하고 있었다.
짐 하나를 덜어줄 요량으로, 돼지 저금통에서 잠만 자고 있는 동전의 유통을 위하여, 그리고 경제관념이 꽝인 남편이 또 몇년간 돼지 밥을 줄지 모르므로. 내가 들고 차에 태웠다.
그냥 세면 재미 없지 않나? 돈의 액수를 근사치에 가깝게 맞히는 사람이 갖는 걸로 내기를 했는데 나야 이러나 저러나 뭐 손해 볼 게 있나? 남편은 6만원에 나는 15만원에 걸었다.
둘이 쭈그려 앉아 돈을 센다. 남편은 100원짜리, 나는 500원짜리.
500원짜리 탑이 줄줄이 늘어가자 남편이 자꾸 불안해 하며 넘겨다 본다.
"애가 없으니 이러면서 노는구나."
내가 한마디 던지며 10개를 맞춰 쌓는다.
애의 재롱에 꺅꺅 넘어가야 할 신혼! 신혼? 사실 애가 아닌 손주놈 재롱에 웃음꽃이 펴야건만 추석날 둘이는 아직 온기가 올라오지 않은 시골 방에 앉아 동전을 세고 있다.
"10원짜리 만드는데 원가가 25원이 든대. 그것도 몇 년 전에. 동전을 빨리 빨리 유통시켜야지, 잠을 재우면 어떻게?" 사소한 잔소리도 늘어 놓는다.
남편은 내가 쌓은 500원짜리 동전을 보더니 포기한다. 그러면서 꿍쳐 놓았던 500원짜리 동전 12개를 꺼내며 이실직고 한다. 울 남편 술 먹으면 이렇게 귀엽다. ㅎㅎ
그깟 6천원 있으나 마나인데.
"내가 술 취해서 500원짜리를 너무 많이 넣었어."
술 취할 때마다 주머니 동전을 털어 넣었다고 몇번이나 후회했다.
220700원이 나왔다. 그리고 차에 던져뒀던 동전도 가져오고, 서랍에 있던 동전, 화장대 위에 있던 얼마 안 되는 동전도 이 기회에 다 모였다. 탑은 더 높게 쌓여 가고 남편의 허탈함은 점점 깊어가고...
"4년동안 적급 붰더니 죽 쒀서 개 줬네." 남편은 화장실로 간다.
잠자던 동전들이여. 행과 열을 지어 내 앞으로 나란히 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