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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다는 거.

햇살가득한 2007. 2. 27. 00:31
자전거를 탄다는 거.
번호 : 2642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141   스크랩 : 0   날짜 : 2005.06.16 13:34

내 별명은 떡순이기도 하다. 누가 그리 불러 주진 않지만 내 스스로 그렇게 부르곤 한다. 
왜냐? 시장엘 가면 떡 집엘 그냥 못 지나가니깐. 
하여 금산 모임에 갔을 때 베이님이 해 오신 허브 떡을 두어 덩어리 꿍쳐 왔다. 
냉동실에 얼렸다가 꺼내 놓으니 말랑말랑 아기 엉덩이 찌르는 거 같다. 
그걸 먹고 나니 아예 저녁을 먹은 뒤 운동을 가려고 밥을 몇 숫갈 떠 먹으니 
다른 때보다 40분이나 늦었다. 
나의 운동 코스는 자전거를 타고 약 3 키로를 달려 성당에 자전거를 묶어 두고는 
성당 뒷산을 휭하니 걸어 올랐다가는 내려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떡 땜시롱 시간이 늦어졌으니 침침한데 산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차들이 거의 없는 이웃 동네를 허벅지가 뻑뻑해지도록 페달을 밟았다.
가던 길로 되돌아 오는 법이 없는 나는 논두렁길로 해서 돌다가 
남의집 담장에 심어 놓은 울타리 콩도 눈여겨 보고
내 텃밭의 고구마보다도 못한 어느 집 텃밭을 보며 으쓱도 해 보고 
전에 베이님 댁에서 음식에 넣어 먹었던 보랏빛 허브가 담밑으로 둘러 핀 것을 보고는 
구경하다가 주인의 경계하는 눈총을 받기도 하면서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개구리가 와글와글 울어댄다.   

                         <가까이 와서 봐>

동글동글한 돌멩이로 집을 지은 집이 있다. 
집 주인의 성품이 느껴지는 정원은 온갖 꽃들이 가득하고 
겨우 내 허리 높이의 밤나무는 꽃을 잔뜩 달고 있다.
그 옆 텃밭을 지나다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김을 매고 있는데
이건 고추밭이 아니라 명아주 밭에 고추가 덤으로 자라는 겪이다. 
우리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호랑이가 새끼를 쳐도 모를" 그런 밭이다. 
요즘엔 풀이 있는 밭이 오히려 신기해 지는 세상이다. 
풀이 못 자라도록 비닐을 씌웠거나 풀약을 치는데 이 집은 그럼 유기농?
순간 오꿈사 사람들 생각이 나면서 자전거를 세우고 밭으로 쓰적쓰적 걸어 들어 간다.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같이 풀을 뽑는데
고추밭 주인 아주머니 뜻밖의 일꾼에 연신 웃음이 나온다.

                   <아,아. 주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풀은 쉽게 잘 뽑혔다. 
단지 막장갑이 아닌 거금의 내 자전거 장갑이 온통 흙, 풀물이 든다. 
가죽을 빨면 쪼그라들지 않을까? 
풀 뽑은 곳을 뒤돌아 보면 휑하니 내 속이 다 시원해 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바람이 고추 가지 사이로 불어 줄 것만 같다. 
또한 고추는 풀과 경쟁하면서도 2세를 만들어 내느라 
미처 가지를 맘대로 뻗지도 못했으면서 몇 개씩 고추를 달고 있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고 가라고 하신다. 

                         <깔깔깔깔!!!>
난 또 인연을 만들고 싶어 차를 핑계로 돌멩이로 지은 집으로 들어선다. 
계피차를 얻어 마시고 다른 아주머니가 권하는 막걸리도 반 잔을 얻어 마셨다. 
떡을 내오셨는데 많이 드시는 걸 보니 아직 저녁도 안 하셨나보다. 
상추를 뽑아 주신다는 다른 아주머니 말씀을 뒤로 하고 나오니 
할머니는 자전거 세워둔 대문까지 따라 나오신다. 
"지나가다가 들러서 차 마시고 가요."
나는 사양 않고 그런다고 했다. 
잿빛 머리에 쪽을 지고 콧날이 오똑한 주인 할머니한테서는  
흘러 나올 얘깃 거리가 많아 보였다.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후미등을 켜고는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 
날파리들이 함박눈처럼 내 얼굴에 와서 부딪친다. 
더러는 콧구멍으로 들어 가고 
더러는 목구멍으로 들어가서 캑캑 거리다가 
아예 물로 씻어 내린다. 
다리에서 음주 단속을 하고 있다. 
'경찰 아저씨, 나 술 먹었는데요. 잡아 보시지.'
물론 경찰은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건 때론 이래서 좋다. 
또 내가 차를 운전하여 바람을 쐬러 가다가 선뜻 밭에 들러 풀을 뽑을 수 있을까?
웬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자전거를 타는 건 걷는 지루함보다는 좋고 
휙휙 지나치지 않는 차 보다 느려서 주변을 감상하기에 좋다.   
기어를 올리고 오르막길을 올라 계단밑에 자전거를 채우니
황소같은 숨소리가 내쉬어진다. 
허벅지가 뻑뻑하며 
땀에 범벅이 된 얼굴에 날파리들도 몇 들러붙어 있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또한 용기가 생겨서 좋다.    

                       <내성적인 여자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