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우리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다.

햇살가득한 2007. 2. 27. 21:40
우리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다.
번호 : 12750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71   스크랩 : 0   날짜 : 2004.06.04 00:14
설마 설마 하다가 우리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다고 확신한 건 바로 오늘이었다.
설마 설마 때부터 되짚어 가보자.
한 달여 전.
아이들을 인솔하여 대절한 차를 타고 응원을 가야 해서 출근 시간이 1시간 10분이나 앞당겨 진 적이 있었다.
아침엔 다른 때보다 10분을 일찍 출근한다는 것은 오후의 1시간과 맞먹는 긴박감이 있는 지라 1시간 10분이란 더 말해 무엇하랴.
밥 할 시간이 없어서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떡을 전자렌지에 돌려 놓고 그 새 씻고, 화장을 하고....
구운 떡은 운전을 하면서 신호등 걸리면 베어 먹자. 씹는 데는 손이 필요 없으니깐. 이런 계산까지 하면서 떡을 들고 나서며 신발장 위에 늘 놓아 둔 차 열쇠를 찾았다.
허걱!!!
아니다. 처음엔 허걱 정도는 아니었다.
신발장 위에는 살펴보고 없어서 방으로 들어와 책상위를 살펴 봐도 없자 점점 조바심이 난다.
4층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 내려가 보니 차에 꽂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집 앞을 통과하는 동료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학교를 다 와 간다는 거다.
아랫집 총각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휴대폰이 꺼져 있다.
진땀이 난다.
안되겠다싶어 초인종을 눌렀더니 그 총각 선생 초인종 소리를 듣고 부시시 일어나 눈 하나만 나올 정도로 문을 열고는 좀 기다리라고 했다.
그 날 온갖 서랍을 다 뒤져봐도 차 열쇠는 아직까지 종적을 모르겠다.

지난 월요일 그러니까 그그저께였다.
일요일 너무 논 탓에 아이들에게 자리를 바꿔주겠노라고 약속한 걸 깜빡했다.
그래서 체육시간을 틈 타 자리 배치도를 완성했다. 그리고는 다이어리에 끼워 넣었다.
아이들은 누가 짝이 되는지 궁금해서 내 어깨 너머로 보고는 희비가 엇갈리는 표정들이었다.
그날은 어찌어찌해서 자리를 못 바꾸고 다음날 화요일이 됐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리 바꿈에 목을 맸다. 하기사 2달 동안 그 자리에 붙박이로 앉아 있었으니 고정적으로 숙제 안 해 오는 녀석 때문에 모둠 점수가 깎여 불만이 곧 터질 듯한 상태였기에 자리 안 바꿔줄테니 오히려 숙제를 해 오는 쪽으로 돌려 보려던 내 생각을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화요일 좌석표를 찾기 위해 다이어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얘들아, 미안. 쌤이 수첩을 집에 놓고 왔단다."
아이들 원성을 뒤로 하고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없었다. 다음날인 어제도 수첩은 집에도 학교에도 없었다.
미련을 두고 오늘 아침에도 책꽂이를 비롯해여 온통 군청색을 찾았으나 색깔만 비슷하고 크기가 다른 앨범에 잠깐 반가움이 일 뿐이었다.
"그래. 우리 집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는겨."
3, 40평이 되는 집이라면 이해가 간다. 겨우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 도대체 어디가 블랙홀일까?
아님 내 머릿속 어딘가에 블랙홀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어느 아지매가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고는 찾았다는 이야기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혹 그 아지매?!!!


p.s. 그 다이어리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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