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팔자

햇살가득한 2007. 2. 27. 00:57
팔자
번호 : 2867   글쓴이 : 김삿갓
조회 : 147   스크랩 : 0   날짜 : 2005.07.21 12:17

내가 살고 있는 4층 아래 담장 너머로 단독주택에서 개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 개 세마리 때문에 난 늦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다.

아니 늦잠은 고사하고 밤잠도 종종 설쳐야 한다. 개 짖는 소리에 벌써 아침인가보다 하고

시계를 보면 새벽 한 시, 두 시... 시도 때도 없다. 

중학교 입구에 있는 우리 집은 중학생들이 정문을 놔두고 샛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개들의 본분을 충실하게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아래의 이 놈은 밤부터 온갖 소리만 나도 짖어댄다. 그러다가 등교가 시작되는 7시부터는

충실히 짖어대서 8시 반쯤에는 조용해 지는데 이쯤되면 이 개의 목소리는 이미

목쉰 소리를 낸다. 자기 몸 돌보지않고 몸바쳐 충성하는 군인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녀석의 태도는 지나쳐 중학생들이 등교를 마치고 나서는 기력이 쇠진하여

우체부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도 그냥 널부러져 있는 것이다.

밤새 짖는 목소리도 경쾌한(?) 경계의 목소리가 아니라 월월월 우는 목소리다.

베란다 문을 열고 욕을 확 쏟아 붓고 싶은 걸 몇번이나 참았다.

내 조만간 개 주인을 찾아가 개 좀 어떻게 처리 하라고 해야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중이다.  

개 꼴을 보라. 성질 더러우니 몸도 거칠거칠하다.

 

 

이 개는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눈치가 좀 있는 녀석이다.

위의 개가 짖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면 이 놈이 성질을 좀 발휘한다.

그러나 꼭 짖을 때에만 짖고 사슬을 끌면서 제 집 주변을 뱅뱅 돌면서 경계 근무를 한다.

 

 

아래의 이 팔자 좋은 개를 보라.

주인은 똑같은 먹이를 줄텐데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성격이 나타난다.  

이 개는 아주 낙천적이던가 지나치게 바보이던가 아니면 둘 다 일게다.

남이 지나가던 말던, 옆의 개가 목이 쉬도록 짖던 말던 이리도 태평하게 지켜 볼 따름이다.

내가 4층에서 어쩌다가 쓰레기통에 넣으면 냄새가 날 것 같은 삶은 계란을 던질 때면

떨어지는 소리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다시 이렇게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느긋한 성격 때문에 살도 좀 있는 듯 하고 또 털빛마저 윤기가 난다.


열흘간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와 보니 첫번째 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슬이 아카시아 잎 쪽으로 감춰져 있는데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는 초복이 지났다는 걸 떠올린다.

그리고는 지나치게 충실하려 했던 성질 더러운 놈의 최후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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