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명절방랑군 1탄

햇살가득한 2007. 2. 27. 22:02
2006.10.04 23:14

 

달력의 긴 연휴를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어디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혼자 어디를 간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난다.

예전엔 설악산, 오대산, 대둔산... 이런델 혼자 다니지 않았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제정신이 아니다.

 

 

10월 4일 아침,

알람이 울렸지만 눌러 놓고 조금 더 자다 일어났다.

안양 MTB 샾에 들러 자전거를 손볼려면 적어도 9시는 넘어야 할 것 같았다.

짐을 꾸렸다. 짐에 치이지 않도록 최소한도의 물건만 챙기기로 했다. 

브레이크, 오일 등을 손보고 미터기 겸 속도계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마침 강릉에 가는 친구가 있어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는 출발.

7번 국도는 4차선이라 위험하여 연곡까지 태워다 주었다.

오후 4시. 자전거를 트럭에서 내리면서도 영 엄두가 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부연동까지 태워다 줬으면 했지만 일해야 한단다.

미터기를 꽂으니 뭐가 잘못됐는지 작동을 안 한다.

오대산까지 40키로라고 이정표가 알려 준다.

부연동까지는 30키로면 가겠지.

헬멧을 단단히 쓰고 결연히 장갑도 끼고는 출발한다.

가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저물면 길가 민박집에서 밥 사 먹고 민박집주인이 들려주는 세상사 얘기를 듣다가 자면 되겠지.

 

 

페달 밟느라 전화 받기도 번거로운데 이 꽃이 브레이크를 잡게 만든다. 이 무슨 꽃인공?

7키로쯤 탔을까?

여울목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힘들면 태워주겠다고.

에공. 힘들어요. 하지만 그냥 가 볼래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7키로 타는데 한 시간이 걸리니 앞으로 서너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다고.  

힘들게 페달을 밟다가도 약간 내리막길도 있고 그렇지만 거의가 오르막길이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그러려니와 안장이 일반 것 2/3 정도 되는 작은 거라 똥꼬가 무지 아프다.

 

 

 

 

 

 

'고생을 사서 하는겨. 누가 시켰나고?'

반문하지만 힘드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부연동 입구가 2.5키로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앗싸,

페달이 저절로 굴러 간다. 잘하면 오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부연동 입구 음식점에 쭈뼛쭈뼛 들어가 자전거를 맡겼다.

음식점 사장님도 집을 비우실거라고 하는데 뭐 도난당하는 것도 팔자려니 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사장님은 산을 걸어 넘어 갈거라니까 차를 얻어 타고 가라고 한다. 

그 말씀에 희망이 생겨서 걷기로 했다.

"짐승은 안 나오겠죠?"

예전엔 나왔는데 요즘은 괜찮단다.

 

5시 40분.   

차로 20분을 넘어 간다니까 빨리 걸으면 40분이나 넉넉히 한 시간이면 도착하겠지.

짚차가 한 대 올라갔지만 얻어 타지 않았다. 얼마후 그 차는 되돌아 왔지만.

하이고, 이렇게 멀었었나. 열흘전에 왔을 때는 물론 차를 타고 넘어가서 몰랐는데 가도가도 오르막길이다.

모퉁이에 세워둔 볼록 거울을 보면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내리막길일거야, 내리막길일거야를 수업이 기대했건만...

 

 

 

이미 날은 어두워 오고 있었다.

여울목님은 걱정이 되는지 또 전화를 하셨다.

이젠 희끄무레하게 잘 보이지도 않는다.

손전등을 아까 샀어야 했는데.

발 밑 낭떠러지 밑에서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두 세마리가. 

휴대폰이 울린다. 동물이 그 소리를 듣고 뛰어 올라올 거 같아서 얼른 받았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친구다.

"응, 동물 소리가 나. 무서워 죽겠다."

친구는 성질을 낸다. 다시 되돌아 오라고. 하지만 되돌아 오기에는 너무 멀리 올라가 버렸고 차라리 더 올라가서 넘어 가는 게 낫다.  

그 집 식구보고 마중을 나와달라고 부탁하란다.

빈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누가 가랬냐고 화를 내면서 걱정한다.

"야, 나도 사실은 무서워 죽겠어. 짐승이 쫒아오면 후려 칠려고 작대기도 하나 들었단 말야."

전화기 송신이 안 되는지 끊어졌다.

제발 전화 좀 하지 마.

적막한데 전화 소리가 더 무서워.

전화가 또 울린다.

여울목님이다.

"어디쯤 갔어요?"

"송전탑 조금전에 지났는데요. 꼭대기까지 아직 멀었나요?"

"거기쯤이라면 아직 멀었는데요."

여울목님 이러실 수가 있어요.

산에 올라갈 때 내려오는 사람들이 얼마 안 남았다는 뻔한 거짓말을 위안삼아 마지막 힘을 쏟으며 올라가는데 이렇게 무서움에 떨고 있는데 아직 멀었다니요.

차 한 대도 안 지나가고...

잠깐 쉬다가도 멧돼지 생각에 발을 옮겨 놓는다.

그놈은 눈이 어두워서 큰 물체처럼 보이면 피해 간다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지팡이처럼 큰 우산이라도 챙겨오는 걸 그랬다.   

아, 드디어 평지가 잠깐 나오더니  내리막길이다.

약간의 안도감에 걸음은 탄력붙은듯 빨라진다.  

낯선 곳에서 어디 정해진 목적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희망찬 일인가.

20대 초반에 엄마랑 다투고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냥 단순히 집을 나와서 버스터미널로 가서 아무 버스나 집어 타고는 대둔산엘 가게 됐다.

남들은 다 하산하는데 혼자 등산하려니 그것처럼 고독한 것이 없다.

거기다가 어디서 자야 하는지 막연한채로.

하루만에 끝난 가출. 으,  창피.

또 친구랑 자전거를 타고 강화도를 돈 적이 있었다. 해가 막 지고 안개가 들판에 깔리며 어슬어슬 추워지기 시작하면 따뜻한 곳이 그리워지면서 막연한 잠자리에 집이 몹시도 그리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난 지금 갈 곳이 있다.

속도가 더 붙는다. 이따금씩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길을 씩씩한 척 걷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서움에 내가 쪼그라들 것 같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는데 차 불빛이 보인다.

길이 Z 자로 굽어진 도로라 불빛은 이쪽 저쪽을 비추다가 모퉁이를 꺾어서 멈췄다.

창문을 열고는 되레 놀란다.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 아닌 컴컴한 산길에서 웬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마을 가로등이 한 개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자 덩치 작은 개가 가벼운 목소리로 짖는다.

반갑다 개야. 네가 사는 마을로 내려 왔으니.

모처럼 길바닥에 주저앉아 좀 쉰다.

성황당을 지나야 한다는데. 전에 아랫집 여자는 거기가 무섭다고 하던데.

어쩔수 없이 지나야 한다.

어렸을 때 상여집이 무서워 멀리 돌아 다니던 게 떠올랐다.

성황당을 지나고 500년 됨직한 소나무를 지나며 위안을 삼고 그리고 여울목님 댁에 도착. 7시 30분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숲과 집이 분간이 안 된다. 전에 본 개가 어디서 나올 듯하여 인기척을 냈는데 나오지 않는다.

난, 정말로 발가벗겨서 사막에 던져놔도 살아 돌아올 여자인가보다. 후후후  

휴대폰을 열어서 빛을 내니 제법 밝다. 여기저기 스위치를 찾다가 손전등도 찾고 스위치도 찾고.

쌀도 찾아서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 있던 밤을 몇 알 까서 밤밥을 만든다며 까다가 홀랑홀랑 다 먹고.

배고픔에 설익은 밥을 차려 먹는다.

개가 나타나 마당에서 안에 있는 나를 보고 짖는다.

"컹컹,당신, 누구야? 왜 남의 집에 들어가 있어? "

"괜찮어, 괜찮어."

더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나.

너희 주인이 여기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어. 이런 말을 해서 알아 들을까? 

어렸을 때 귀신 얘기에 귀를 막으면 엄마는 나이가 들어봐라.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은 귀신 때문에 잠을 설칠 거 같지는 않다. 나도 사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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