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이율배반적인 성향을 다분히 가진 여자임에 틀림없다.
10차선에 바짝 붙어 지어진 아파트에서 온갖 소음을 들으며
옥상에 흰 빨래를 널면서 다짐하였지.
촌으로 가자.
아직은 직장을 옮겨오지 못해 주말과 주중에 하루를 자고 가지만
서리가 내리는 촌 생활이란 그리 녹녹치 않음을 느낀다.
올 때마다 배추는 다른 모습으로 제 성장을 보여준다.
아침에 서리가 내렸을 때는 이파리가 푹 쳐져 있더니
해가 드는 낮이 되자 다시 되살아 나고
안으로 안으로 차곡차곡 배추잎을 포개에 포기가 앉고 있다.
묶어줘야 속이 꽉 찰 듯 해서
동네 논을 어슬렁거리다가 짚을 한웅큼 집어 왔다.
짚으로 묶어줘야 웬지 촌 생활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억지로 해 봤던 배추 묶기를
지금은 자발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제는 추위에 나가떨어졌을 법한 벌레들이
아직도 똥을 무더기로 싸 놓는 것을 보고는
집게를 들고 벌레 잡기에 나섰다.
배추를 묶어주면 덜 추워서 놈들이 안에서 아예 살림을 차릴 게 뻔하다.
겉 보긴 멀쩡해도 속에는 휑 빈 것을 떠올려
배추 묶기를 다음주로 연기했다.
전에 보던 시커먼 벌레는 이젠 바라볼 정도로 조금은 익숙해졌다.
꿈에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을 집게로 집어내 바로 발로 터뜨리지 못하고 낙엽을 한 번 덮어서 발로 지긋이 누른다.
이러면서 뭔 시골살이를 하겠다는 건지.
시골살이의 또 다른 적은
추위와 외로움이다.
보일러를 틀어도 마음이 추워 그런지 자꾸 어깨가 움츠러 든다.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촌 생활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어느정도 그건 허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보았을 때는 그게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닥쳤을 때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건
내 이율배반적인 사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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