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상다반사

배추밭을 사수하라

햇살가득한 2007. 9. 30. 14:55

밭이랄 것도 없이 마당 한켠에 심은 40포기의 배추.

아직도 심은 그대로 자라지 않는 놈은 그대로 두고

무언가 내 손길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녀석들은 보람을 안겨준다. 

잠에서 깨면 미처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배추밭에부터 먼저 가 본다.

한바퀴 돌아보면 녀석들은 여전히 푸른 잎으로 싱싱하게 아침을 맞고 있다.  

그런데 배추가 자랄수록

함께 통통하게 커가는 녀석들이 있으니

톡톡 날아 튀는 놈-이건 그래도 좀 귀엽다. 배추잎을 어느 정도 나눠 먹을 용의가 있다.

민달팽이-이 놈은 예전에 징그러웠으나 최근에 친해진 녀석이다. 

집을 지고 있는 달팽이-요건 애교로 봐줘도 될 손가락으로 집어 내는 녀석이다.

배추잎을 닮은 초록색 배추벌레-작은데다 초록색이 예뻐서 이것도 통과다. 

그리고!!!

시커먼 갈색의 벌레.

문제는 이 시커먼 갈색의 벌레이다.

녀석은 새끼손가락만해서

싸는 똥도 엄청나고

그러다보니 먹어 치우는 양도 많을텐데

문제는 내가 이 놈을 무지 징그러워한다는 거다.

전에는 손으로 이파리를 뒤적이며 벌레를 잡아 나무 집게로 집어 냈는데

이 놈은 그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전에 한 놈을 발견하고 긴 나무로 눌렀으나

으~~

그 물컹한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져 올 정도다.

지그시 눌러 터뜨렸다.

그 날 밤

나는 그놈이 나타나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2시 50분.

갈색에 무늬까지 선명한 굵기가 한웅큼이나 되는 녀석이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떴는데도 비몽사몽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려 불을 켜고 난 뒤에 사라진 놈.

그 다음부터는 지팡이로 썼던 나무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

배추잎을 들춘다.

벌레들이 파 먹어서 구멍난 배추.

거기다가 내가 나무로 들춰서 구멍난 배추.

우리집 배추로 뭐 망사 스타킹 만들일 있을까만서도

그래도 시커먼 그놈과는 친해질 수 없는 먼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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